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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평점 :
끊임없이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게 현대 프랑스 문학의 특징이고, 또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는데, <행복만을 보았다>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이 쓴 거니까.
1, 2, 3부로 나뉜 구성 중 1부는 오로지 화자의 내면 고백만으로 진행된다. 말투는 무심하지만 그 속에 미지의 우울을 숨겨둔다. 미지의 것에 독자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감지된 위험은 옅은 긴장을 두른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141p까지 걷다 보면 독자의 감각도 역치에 다다라 더 이상 위협을 감지하지 못한다. 위험이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니까. 그 순간 이 작가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면 한다. 치명적 일격을 가하기 위해 맹수는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
"영혼의 근간을 흔드는 작품"이라거나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고 평범해 보이는 삶 속으로 깊이 헤엄쳐 들어간 공허와 우울을 땅 위로 건져 올렸다는 점에서 감탄할만한 소설이다. 이제 그 우울과 공허는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삶을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우연히 찾아오나? 재앙을 당하는 사람은 그저 운이 없었던 것 뿐일까? 이것들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 우리를 집어 삼키는지 알고 있는가? 가끔 뉴스를 보면 지나칠 정도로 성실했던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친짓을 벌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보통의 샐러리맨, 성실했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앞에서 상습적으로 성기를 꺼내 가정을 파멸시킨다. 두 눈 가득 사랑을 담아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던 엄마가 아이를 목 졸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단순한 일탈, 혹은 특정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정신 결함으로 치부하기에 그것의 겉모습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평범하다.
당신은 <블레이드 러너>의 릭 데커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평범과 똑 닮았지만 실상은 평범의 가면을 쓴 발작을 찾아내야 하는. 당신이 정말 릭 데커드라고 생각한다면, 한 가지만 더 생각해줬으면 한다. 안드로이드를 체포하려는 당신 조차 안드로이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똑같은 발작을 지니고 산다. 그것은 평범의 얼굴을 한 우울과 허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평생 한 번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특정한 사람들만이 가진 특수한 정신 결함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내재된 원초적 결함이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가 힘겹게 낚아 올린 거대한 물고기를 유심히 쳐다보라. 그리고 당신 마음 속 깊숙히 헤엄쳐 들어가 그것과 똑 닮은 물고기를 작살로 찍어 물 위로 올라오라. 그것이 우리를 파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