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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흰색 테두리 안에 현대풍 일러스트가 있다. 좌우 상단 여백은 1센티, 하단은 2센티로 보인다. 출판사는 밝은세상이다. 제목은 <너는 모른다>.
일러스트 스타일을 보니 한 때 유행했던 <빅 픽쳐>가 떠오른다. 아니나다를까 뒷표지 날개에 <빅 픽쳐> 광고가 나온다. 같은 출판사의 책이다. 미스테리 스릴러 계열의 브랜딩 전략으로 디자인에 일관성을 준 것 같다. <빅 픽쳐>가 꽤 잘 팔렸으니 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다른 책들은 후광 효과를 얻을 것이다. 요즘 책은 거의가 마케팅이다.
가격은 13,800원. ISBN은 978-89-8437-243-6. 바코드 넘버는 9 한칸 띄고 788984 한 칸 띄고 372436 그 옆에 짧은 바코드 하나 더. 03860.
뒷표지 그림은 지하 감옥이다. 책을 다 읽어봤는데 이런 류의 감옥은 나오지 않는다.
'새벽에 눈을 뜬 브누아 경감은 지하실 철창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잡아 넣으려면 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이 그림대로 따르면 지하실 한 켠의 벽을 부순 뒤 납치한 브누아 경감을 넣고 철창을 댔다는 얘긴데 일러스트 작가가 이 책을 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에디터라도 지적했어야지. 어이 거기 사소한 거 가지고 시비걸지 맙시다. 넵.
다시 앞표지로. 빨간 머리의 여자가 분명 브누아 경감을 납치한 리디아다. 눈매가 날카롭고 입꼬리가 처졌다. 미인이라고 볼 수 없을 뿐만아니라 쉽게 다가가기 조차 어려워 보인다. 브누아 경감은 무슨 생각으로 이 여자에게 빠져 납치를 당한 걸까? 책에선 리디아가 동침을 미끼로 경감을 유혹했고 스카치에 약을 타 일을 처리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여자 한테선 그런 은근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술을 한 잔 걸치고 주차장으로 나와 차문을 여는데 뒤통수를 5킬로그램짜리 렌치로 후려쳐 잡아온 것 같은 얼굴이다. 나라면 절대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장담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만.
리디아의 옆에 거꾸로 선 남자가 브누아 경감이겠지. 이렇게 봐선 경찰이 아니라 동네 양아치 같다. 그런데 체크 무늬 남방이라니. 이건 또 읍내 바에 나온 미국 시골 아저씨의 복장 아닌가. 반쯤 가린 얼굴에서 얼핏 영화 배우 크리스토퍼 월켄의 모습이 비친다. 그가 출연한 뮤직 비디오 <Weapon of Choice>는 꼭 보자.
앞 표지를 넘기면 책 날개에 예의 그 작가 소개가 있다. 프랑스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까지 왔겠지. '이 책의 한국어 저작권은 신원 에이전시를 통한 Fleuve Noir와의 독점 계약으로 도서출판 밝은세상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 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은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 및 복제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아마존 프랑스는 이 책이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청소년 동화 정도로 정락시킨 무시무시한 소설!'이라고 했다. 여기서 아마존이란 미국에 본사를 둔, 제프 베조스가 이끄는 인터넷 공룡 기업이 아닐 것이다. 이 아마존은 브라질에 위치한 열대 우림, 지구의 허파로 불리나 심각한 삼림 파괴로 몸살을 겪는 그곳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존 프랑스란 그 열대 우림 내의 한 원주민 혹은 결코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는, 유럽의 프랑스와 동명인 작은 부족일 것이다. 이런 가정 없이는 코그니티브 디스오넌스(Cognitive Dissonance) 즉, 인지 부조화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을 감당할 길이 없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에 대한 감상이 책의 재미있고 없음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 행복하게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