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 인생의 부조리를 설명하는 책이 있다면 그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인간은 수 십, 수 백, 수 천 세대를 거치는 동안 끊임없이 아이를 낳아 고통과 절망과 분노로 들끓는 이 세상에 바쳤다. 단 한 번도 아이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내 보기에 탄생은 결코 고귀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오로지 종족을 번식시키겠다는 본능에 의해 저질러진, 불공정 계약이다.


이 계약을 파기하는 방법은 자살 뿐이다. 오로지 자살만이 나의 의지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돌려준다. 자살에 온갖 죄악을 뒤집어 씌우고 침을 뱉고 모욕을 해도 그 진실은 반짝반짝 결코 숨길 수가 없다.


백인 남자는 고속으로 달려오는 선셋 리미티드에(뉴욕을 지나는 통근 열차) 몸을 던졌다. 그를 구한 건 흑인 남자였다. 백인 남자가 눈을 떴을 때 그는 흑인 남자의 집에 있었다. 흑인 남자는 백인 남자에게 묻는다. 왜 자살을? 백인 남자가 흑인 남자에게 대답한다. 왜 삶을?


백인 남자는 "고통과 인간 운명은 같은 말"이라고 한다. 흑인 남자는 이에 "고통이 없다면 행복을 어떻게 인지 하냐"고 응수한다. "뭐에 비교할건데?" 흑인 남자가 덧붙인다.


흑인 남자는 젊은 시절 나쁜 짓을 많이 했다.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사소한 시비가 붙은 동료 수감자와 칼부림을 벌였고 거의 죽다 살아난다. 흑인 남자는 아무도 없는 의무실에서 홀로 눈을 뜬다. 그 순간 흑인 남자는 자신이 아무도 없는 곳에 있더라도 누군가 항상 자기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흑인 남자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흑인 남자는 자신의 행복을 자기의 과거와 비교해 얻은 걸까? 행복은 오로지 비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흑인 남자는 자신의 과거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상관 없이 바로 지금, 행복하다. 행복은 뭔가와 비교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가슴에 닿는 순간 알 수 있는 객관적 실체다.


화장실이 급한 인간은 깨끗히 장을 비우고 나오며 배가 아팠던 이전과 비교해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바로 그때, 그냥, 시원하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지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생을 총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다. 행복과 비교를 연결하는 건 오히려 불행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행복을 찾기 보다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를 현재와 비교해 불행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백인 남자의 인식은 탁월하다. 흑인 남자의 설명은 나이브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백인 남자를 막아 세우지 못한다. 흑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백인 남자가 나간 문 앞에 꿇어 앉아 그가 다시 자살을 저지르지 않기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순진할 수가!


신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들은 타인을 위해 기도한다고 믿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왜 모르는 걸까? 기도로 될 일이었으면, 


애초에 고통을 받지도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