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운 분야에 입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분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철학을 배우고 싶으면 철학사를, 미학을 배우고 싶으면 우선 미학사를 들여다 보라는 말이다. 


역사는 개괄이고 종합이다. 훑어볼 수 있다. 그저 코를 대고 쓱 냄새만 한 번 맡아보라. 분명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한 번 구미가 당기고 나면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게 당신과 나, 우리 '지식 포식자'들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사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 경제학에서 최신의 대세로 떠오른 행동 경제학(분량이 코딱지 만큼이긴 하지만)까지 300년에 다다르는 방대한 경제사를 역시 60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엮어냈다. 어쩔 수 없지 뭐, 300년 짜리를 60쪽으로 묶을 수는 없잖아.


나는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아무리 경제에 관심이 많아도 비전공자는 비전공자. 마셜의 '한계 효용 이론'이나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를 단 한 번의 독해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 두 번을 연거푸 읽은 지금은 완전히 이해했나? 그렇지 않다. 내가 이 책을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본'이라는 건 반복의 횟수에 비례해 그 강도가 결정된다. 물론 잘못된 기본이라면 단단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구성이 탄탄하다. 경제학의 핵심만을 골라 촘촘히 짜 넣었다. 365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재미있다.


당연한 걸까? 세상에는 중요한 것일 수록 배우기 어렵고 힘든 경우가 많다. 경제학이 그렇다. 이런 분야일 수록 더욱 재미를 고려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심지어 어떤 대가들은 자기 학문이 난해할 수록 만족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높고 굳건한 진입 장벽을 세워야 자신이 더 위대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지. 아무도 이해 못하는 걸 나 혼자 알고 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저자는 지루하고 어려운 경제학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문장 곳곳에 재치와 위트를 풀어 넣었다. 고명한 학자가 유머를 갖추기란, 독수리가 근시가 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법이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게 또 세상의 이치다. 이 책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의 경제 담당 비서관 이라는 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자유주의 진영의 경제학자다. 물론 600 페이지의 책을 써 내려가는 동안 저자는 단 한 번도 일방적인 편들기나 자기와 반대편에 선 주장에 노골적인 적대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래도 뉘앙스가 있다. 


은근한 편들기. 따라서 균형 잡힌 경제사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이라면 토드 부크홀츠와는 완전히 반대 쪽에 서 있는 '장하준 류'의 경제사를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빠져 있다.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게 2007년 이니까 2008년에 터진 금융 위기를(07년에 시작해 08년이 본격화 된) 설명하려면 웜홀과 중력자 별을 이용한 시간 여행이 필요했을테니 결코 저자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 동안의 경제학 이론을 뿌리 부터 재고해 봐야 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일본 경제의 몰락과 미국의 부흥을 비교하면서 '금융 서비스를 고도화 시키지 못한 일본인'과 '복잡한 파생 금융 상품을 개발해 낸 창의적 미국인'이라는 도식을 제시한다. 내 알기로 그 '창의적 파생 상품'이 2008년에 미국을 강타한 역사상 최대의 금융 위기의 주범이었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저자는 이 금융 위기를 어떻게 설명할까?


벌써 3판이 나왔으니 4판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한 명이 독자는 확보한 셈이니 고민하지 말고 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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