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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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는 내 아버지의 소설가다. 영문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그저 난해하다는 이유로 포크너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영영 빠져버렸다. 확실히 문학은 개미지옥 같다. 한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 삼킬 만큼 거대하고, 집요하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이야기 자체가 난해한 건 아니다. 난해하다기 보다는, 기괴하다. 어쩌면 기괴하기 때문에 난해한 걸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은 그것의 진짜 의미에서 두어 발자국 떨어져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솔직히 파악이 됐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그것이 진짜인지 확신할 방법도 없다. 느낄 수 있는 건 일련의 모호한 분위기다. 그러나 분위기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뜩, 몸으로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피부에 닿는 순간 그 어떤 진실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한 가족의 독백으로 이뤄져 있다.



바더만


바더만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 흙투성이 마당에 놓았다. 엄마에게 보여줄 생각이다엄마는 침대에 누워 죽어간다. 물고기가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채 꿈틀댄다. 엄마가 죽었다. 물고기가 죽는다. 


나의 엄마는 물고기다.



캐시


캐시는 엄마가 침대에 눕는 순간 엄마의죽음을 예견했다. 캐시는 엄마가 낳은 첫 번째 자식이다. 아들이다. 그리고 목수였다. 캐시는 엄마가 아파 누워 있을 때 부터 줄곧 말 없이 관을 만들고 있다. 탕! 탕! 탕! 아파 누워 있는 엄마의 귀에 자신의 관을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꽂힌다.




사람들은 달이 어딘가 덜 떨어진 아이라고 말했다. 달은 둘째 아들이다. 할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달은 엄마의 관을 마차에 싣고 40마일을 가는 동안 어느 마을의 마구간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그날 밤 달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집의 마구간에 불을 지를 것이다. 그리고는 경찰에 잡힐 것이다. 사람들은 역시 달이 정신병자였다고 말한다. 아니다. 달은 그 누구보다도 엄마를 사랑했을 뿐이다. 엄마의 관을 땅 속에 묻고 나면 다른 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일상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바래게 만들 것이다. 엄마는 죽었을 때 죽는 게 아니다. 엄마는 잊혀졌을 때 죽는 것이다. 그래서 달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달은 불을 지르고 정신병자가 되어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다.



주얼


주얼은 셋째 아들이다. 엄마를 가장 사랑한 건 달이었지만 엄마가 가장 사랑한 건 주얼이었다. 주얼은 엄마의 아들일 뿐 아빠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얼은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관을 실은 마차가 강에서 전복 됐을 때 사람들은 모든 게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마차에서 뛰어내려 강둑으로 올라갔다. 주얼은 보이지 않았다. 물 속에서 마차의 바퀴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주얼은 엄마의 아들이었다.



듀이 델


엄마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일한 딸 듀이 델이 생각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남자 뿐이다. 남자는 나에게 10달러를 줬다. 읍내에 도착하면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약국에 갈 것이다. 남자는 10달러면 충분할 거라고 말했다.



앤스


사람들이 나를 멍청한 남편이라고 부르는 걸 안다. 그들은 마차가 강에서 전복된 것도, 여름날 관 속에서 시체가 썩는 것도 내 탓이라고 말한다. 내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내는 자기가 죽으면 꼭 고향 마을에 묻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킬 뿐이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왔고, 강이 불었고, 다리가 떠내려갔다. 비가 온 것도, 강이 불은 것도, 다리가 떠내려간 것도 내 탓이란 말인가?


아내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 들러 틀니를 해 넣을 것이다. 그리고 새 아내를 만날 것이다. 아내에게는 근사한 축음기가 있다고 했다. 아내는 축음기와 함께 내 집으로 갈 것이다.



휘트필드


사람들은 애디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을 듣고 나는 애디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마을의 목사다. 나에겐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마지막 회개를 할 것이다.


애디는 죽으면서 나와 저지른 죄악을 고백할까?


애디는 죽으면 그만이다. 죽고 나면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워 모욕하고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비 때문에 다리가 떠내려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웃집 남자의 딸로부터 애디가 이미 죽었다는 말도.


나는 용서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입술이 죄를 발설하기 전에 그녀를 죽인 것이다. 나의 주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적을 내리신 것이다. 그의 집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길.



애디


살아 있는 이유는 죽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아버지는 말하곤 했다. 마침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p.203). 이웃집 여자는 내가 아이들과 남편,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곤 했다(p.201).


캐시는 나를 위해 관을 만들었다. 나는 죽어 그 관에 눕혀질 것이다. 남편은 이 더운 여름날 내 관을 마차에 싣고 고향 마을로 떠날 것이다. 다리는 강물에 떠내려 갈 것이고 마차가 전복되 내 관과 내 아이들이 물에 잠길 것이다. 썩은 내 몸은 지나는 거리 마다 끔찍한 냄새를 남길 것이다. 마침내 나를 땅 속에 묻고 나면 남편은 두 손에 근사한 전축을 든 새 아내와 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천만다행인 건 이 모든 일이 벌어질 때 나는 죽어 누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죽어있으므로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고,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축복 받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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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aal 2014-12-02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겠어요. 정말 난해하네요

한깨짱 2014-12-02 13:0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네, 제가 일부러 더 난해하게 썼어요. 그래도 기회가 되시면 한 번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