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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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시간이 다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엔 이유가 있음을 믿고 버티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속속들이 삶을 파헤쳐 기어이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내겠다는 사람도 있다. 마치 그 이유를 알아내면 다시는 삶이 줄 고난과 모순에 고통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은(25살, 여) 세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느날 문득 자기 자신을 설명하라는 스스로의 요구에 맞닥뜨린다.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왔는가. 그 요구에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결심한 안진진은, 그러나 곧 자기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엄마, 바로 엄마의 삶이었다. 그녀는 마음 속 구석진 곳에 놓여 있던 녹슨 상자를 꺼내 연다. 상자 안에는 엄마의 삶이 들어 있었다. 빛바랜 엄마의 삶을 들어올리자 안진진은 그 뒤로 주렁주렁 딸려오는 삶의 모순을 목격하게 된다. 



엄마와 이모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다. 두 여자는 한날 한시에 태어났다. 두 여인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말로는 부족할만큼 지독하게 닮았다. 그러나 똑같은 조건에서 태어나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지독하게 닮은 두 여자의 삶은 결혼 후로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의 엄마는 말썽꾸러기 술꾼 남편을 만나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남편은 술을 먹고 패악질을 하다 정신을 차리면 모아둔 돈을 훔쳐들고 집을 나가 몇 일이고 몇 달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엄마는 시장에서 좌판을 벌인다. 팬티와 양말을 팔아 몇 십년간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쳤다. 그래, 이제야 좀 숨을 돌릴까 싶었더니 이내 막내 아들이 살인미수로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엄마의 삶에는 오히려 활력이 넘친다. 마치 고난이 살아갈 동기라도 되는 듯이, 펄펄 끓는 활력은 두터운 절망 앞에서도 엄마의 삶을 나아가게 한다. 


반면 이모의 삶은 고급 병원의 무균실처럼 깨끗하다. 이모에겐 술꾼 남편이 없다. 아이들은 한 번의 말썽도 없이 모두 훌륭하게 자랐다. 이모에겐 단 한명의 시끄러운 인간도 없다. 그런데 이모의 삶에는 자그만 새싹하나 틔울 수 없는 팍팍한 건조함이 있다. 박제된 동물은 살아 있는 생명보다 더 생생하고 윤기나는 털을 뽐내지만 가짜라는 것을 숨길 수 없듯이 이모의 삶은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도리어 인간의 삶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행복으로 가득차 있지만 진짜같지 않은 삶. 이모는 끝내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삶이 스스로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고난의 이유


영화 <매트릭스>에서 아키텍트가 자신을 찾아온 네오에게 매트릭스의 버전에 대해 설명해줬던 장면이 기억난다. 거기서 아키텍트는 매트릭스의 최초 버전이 오로지 행복으로만 가득찬 세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행복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이후 아키텍트는 인간이 고통을 통해 현실을 인지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매트릭스에 고난을 프로그래밍했고 이후로 아무 문제 없이 매트릭스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순>은 고난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고난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고. 고난은 더 큰 고난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끝없이 투여되는 예방주사 같은 거라고. 


고난은 정말 축복일 수 있을까? 


그래서 삶은 거대한 모순인걸까?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고난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친 폭력같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게 정말 고난이냐고. 이 모든 게 의도된거라면,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이 약속하는 천국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거냐고.


양귀자는 <모순>을 쓰기 전 <슬픔도 힘이 된다>는 소설집을 낸 적이 있다. 그녀는 아마도 슬픔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삶을 극복하는 법이 그 모순을 긍정하는 것임을 배웠을 것이다. 나도 그녀의 나이가 되면 내 가슴을 조이는 고난들을 따뜻한 외투처럼 여길 수 있을까? 뭐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죽을 것처럼 허우적대기는 하지만 결코 가라앉지 않고 있으니까. 이 허우적댐이 조금씩 스트로크로, 물장구로, 숨쉬기로 바뀌어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수영이 될 수 있음을.


나는 그대로 가라앉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를 따라 수영 선수가 될 수 있음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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