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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우주 - 인간 삶의 깊은 곳에 관여하는 물리학의 모든 것
닐 투록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현대 물리학 입문서로서 전 세계 어떤 책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이 강력 추천했다고는 하나, 이 책은 확실히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다른 점이 있다.
브라이언 그린은 너드 혹은 긱의 냄새가 나는 사람이다. 사명감이나 의무가 아냐. 물리학 얘기라면 그냥 즐거운 거라고. 알아 들을 수 없는 표정을 하면 비유에, 그림에, 실험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속사포처럼 설명을 쏟아낸다. 듣는 사람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지만 그 뜨거운 열정에 웬지 모를 충만함을 느끼는 게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특징이다.
반면 닐 투록의 책은 '물리학 얘기'라기 보다는 '물리학에 관한 얘기'에 가까울 정도로 에세이 느낌이 나는게 사실이다. 구체적 설명은 존재하지 않아. 고로 쉽게 이해 가능한 부분은 물리학 역사에 대한 이야기거나 유명 과학자들의 일화 정도에 불과하다.
투록은 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은 학술 서적이 아니다. 나는 물리학의 몇몇 가장 큰 아이디어들에 대해 설명하겠지만, 균형 잡힌 역사를 전달하거나 중요성에 따라 적절히 배분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썼다. 닐 투록은 과학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이 책을 학술 서적으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누락됐고 '우리 안의 우주'는 어려운 학술서적 보다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되버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과학이 우리 사회로부터 달아나려는 것을 막으려는 닐 투록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뿐입니다', '도덕과 사회요? 그게 어쨌단 말입니까? 우리는 과학자입니다'. 투록은 이런 생각을 가진 과학자들에게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극적 몰락을 예시로 들며 엄중하게 경고한다. 그는 과학도 예술이 될 수 있으며 과학자들 모두가 따뜻한 인류애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낭만주의자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유년기의 영향이 큰 듯하다. 그의 아버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무려 1948년에 법률로 지정된 악질적 인종 분리 정책)' 정권에 저항하다 투옥된 정치범이었다. 아버지의 석방 후 탄자니아로 명망한 투록은 이후 런던으로 갔고, 그곳에서 낯설고 축축하고 음울한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망명자 사회에 합류했다.(p.12)
1980년대에 이르러서도 남아공의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봄은 왔다. 1993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고 아파르트헤이트는 붕괴됐다.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최악의 세상 속에서, 끝내 희망을 보고야 만 인내의 경험은 그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긍정적 사고를 만들어줬을 것이다. 낭만주의는 이렇게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낭만주의조차 이 책을 최고의 물리 교양서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유는 앞서 기술한 바, 더 이상의 채찍질은 험난한 역경을 지나쳐온 저자에게 큰 실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