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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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사실과 가치가있다. 사실은 객관적, 과학적 검증을 통해 참, 거짓을 명확히 내릴 수 있는 것이고 가치는 상황, 문화, 주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변할 수 있는 것. 예컨대 '태양은 항성이다'라는 진술은 사실 판단, '태양은 아름답다'라는건 가치 판단인 것이지. 바쁜 시간에 왜 이런 싱거운 정의를 내리고 있느냐고? 나도 동의해. 하지만 어쩌겠어 앞으로 소개할 이 책이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사실, 가치 판단의 주관성이 완전한 헛소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러니까 사실과 가치에 대한 우리의 지난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거지.







가치 판단의 주관성이 헛소리라는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미국인들이 청국장을 먹는 한국인을 시체를 먹는 좀비라고 매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산업 문명의 시민들이 아마존의 원시 부족을 야만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굳이 초딩 시절의 도덕 교육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현대인 대다수는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교양인의 덕목이라 믿는다. 저자 샘 해리스는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인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완전 헛소리. 참과 거짓의 칼날이 사실을 정확히 자를 수 있듯이 가치 또한 '보편적 옳고 그름'으로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 다시말해 청국장을 먹는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무시무시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개소리는 집어쳐!라고 말하기 전에 그 근거를 한 번 들어보는 관용을 베풀어 보자. 


저자가 봤을 때 도덕과 비도덕을 가르는 기준은 행복이다. 어떤 현상이 전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하는가? 기여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그러나 백번 양보해 이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과연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난공불락의 질문을 돌파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통계적 추론도 -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통 이러이러한 것에 행복을 느끼더라 - 서구 문명 사회를 기준으로 한 독단적 판단도 아니다.


인간은 왜 행복을 느낄까? 우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외부적 사건이 있어야 한다. 우리 뇌는 이 외부 사건을 인지적으로 처리한 뒤 그 결과로 행복 또는 불행의 불을 켜는데,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은 결국 뇌의 상태인 것이고, 이 말은 우리가 현재 뇌의 상태를 관찰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어디에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현대의 뇌 과학이 이것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시간의 문제지 논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첫째 도덕은 결국 인간의 행복에 대한 문제다.

둘째 행복은 뇌의 현재 상태에 다름아니며 뇌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는 뇌의 상태를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셋째 이 말은 결국 어떤 가치가 선하고 악한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치 판단의 선악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면, 매 선거때마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떤 정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 전체의 행복 증진을 위해 보수가 옳은가 진보가 옳은가? 이것은 더 이상 토론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으로 참 거짓을 밝힐 수 있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샘 해리스의 멋진 신세계!


논리적 타당성을 떠나 저자의 주장은 우생학, 유대인 학살, 히틀러 같은 이미지를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한국인은 청국장이라는 식문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인류 전체의 행복을 저해한 비도덕적 국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영리하게도, 샘 해리스는 이런 애매한 사례 대신 '여자에게 베일을 강요하는 중동 문화' 내지 '여자의 음부를 꼬매는 아프리카의 관습' 등을 예로 들어 가치 판단의 선악 구분이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가 네오 나치스트거나 뇌과학 성애자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선악을 확실히 구분함으로써 인류 전체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명백한 비도덕적 행위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고자 한다. 모든것이 뜻대로 이뤄졌을때 뇌과학은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악의 치료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악을 치료한다는 개념은 정말 참신하고 멋진 생각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 샘 해리스가 가진 이 순수한 열정만큼은 존중해 주고 싶다. 하지만 뇌과학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걸 가감없이 완벽하게 드러내 준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왜 그럴까? 만약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비도덕이라는게 증명됐다면 과연 미국이 아프간, 이라크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까? 샘 해리스의 뇌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신형 폭격기를 이끌고 민간 지역을 공습하는 미국을 향해 '당신의 부도덕함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 뿐이다. 


나는 뇌과학의 불합리함이 아닌 바로 이 무능력함을 토대로 샘 해리스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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