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
이주호.황조윤 지음 / 걷는나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써야 팔리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펴든 책 '광해 왕이 된 남자'. 천만 관객이 든 영화라면, 과정이야 어떻든 그 이야기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렇게 수준 낮은 드라마에는 잘도 열광 하면서 왜 영화에만큼은 그토록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내기 때문인가요?


광해는 대체로 좋은 평을 받기는 했지만 일부에선 '억지로 울리려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억지로라도 독자를 울릴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광해가 재미있는 이유요? 우선 술술 읽힙니다. 260페이지 짜리 장르 소설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근엄한척 해봐야 남는거 하나 없습니다. 날카로운 정치적 견해나 치밀한 역사 연구에 감탄하기 위해 광해를 산 사람이 있겠습니까? 장르 소설은 우선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쭉쭉쭉 진도가 나가야 되요. 쭉쭉 진도가 나간다는건 뒷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다는 얘깁니다. 


광해는 그런 소설이에요. 구중궁궐 은밀한 왕궁 안에서 질퍽한 음모가 벌어집니다. 왕을 시해하려는 자가 있고 그걸 막으려는 자가 있어요. 첨예한 갈등이 불꽃을 튀면서 가슴을 졸이게 만듭니다. 책장이 훨훨 날아 다녀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하선은(주인공) 결국 죽을까? 그럼 광해는?


소재가 광해였다는 것도 좋았어요. 솔직히 광해가 누군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 나라 관객들 잘 모르잖아요. 바꿀 수 없는 사실. 정해진 결말. 역사를 영화화할 때 가장 큰 걱정거리 하나가 없어진 거에요. 사람들이 모르니까, 이야기의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겁니다.


둘째로 도승지 허균. 저는 허균이야 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조선의 역사를 잘 모르는건 다행인데, 그렇다고 너무 모르는것도 문제에요. 그걸 허균이 해결해 줍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허균이에요. 홍길동의 아버지. 


같은 아비의 자식이라도 어느 뱃속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신분이 구별되던 조선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서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웅 활극을 그린 남자. 그렇게 진보적이었던 남자가 한 나라의 도승지(현대로 따지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합니다)입니다. 그리고 정사에 있어서까지 파격을 일삼았죠. 통쾌합니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라면 대국을 앞에 두고도 당당할 수 있는 패기와 기개가 있어야죠. 우리가 바라던 정치인이 바로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이 소설 웃깁니다. 그게 영화화된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나라 관객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감상평이 '남는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관객들에게 적당히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커다란 웃음을 안겨주면 대체로 이런 얘기는 사라집니다. 진지한 주제 속에서 활짝 핀 웃음. 이게 바로 팔리는 글의 조건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전 이 소설이 별로였어요. 역사가 너무 파괴됐습니다. 멸종했어요. 우리에게 역사는 그저 이야기거리에 불과한가?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비참한 현대사를 쓰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건 역시, 지금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지도자. 국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권력을 돈 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는 지도자. 국가를 위해선 그 높은 자리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면서. 우리 모두 19일날 투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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