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부터 글을 좀 쉽게 쓰려고 합니다. 조곤조곤, 쉬엄쉬엄 옛날 얘기 하듯, 물 흐르듯 그렇게. 첫 번째 작품은 조지프 헬러의 '캐치-22'입니다.






'캐치-22'를 알게 된 건 다른 사람의 소설에서였어요. 커트 보네거트였던가 다른 사람이었던가. 정확한건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소설가들이었을 거에요. 그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캐치-22'를 최고의 소설로 꼽았습니다. 이렇게 연을 맺게 된 책들은 실패할 확률이 적지요. 


'캐치-22'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 공군 폭격수들의 소동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요사리안! 요사리안은 벌써 50회 이상을 출격했지만 승진에 대한 욕심으로 50회, 55회, 60, 70, 80회! 자꾸만 횟수를 늘리는 캐스카트 대령 탓에 똥냄새 나는 전쟁터에 발이 묶인 불쌍한 폭격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대응법은 두 가지입니다. 애국심으로 정신을 마비시켜 전장에서 장렬히 폭사하던가 아니면, 미쳐 버리던가. 요사리안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요사리안은 자신이 정신병자이므로 더 이상 출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함정에 빠지고 말아요. 함정은 캐치-22. 캐치-22는 공군 규정집으로, 요사리안이 귀향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대고 있습니다.


1. 미친 사람은 폭격에 나갈 수 없다.

2.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미친것이 아니다. 


머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 빠져 나갈 수 없는 영원의 미로. 비논리적 논리성, 불합리, 미치고 펄쩍 뛸 노릇. 네, 이 소설은 부조리 문학입니다.





현대인이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역시 세계 대전을 통해서였습니다. 데카르트가 시작하고 뉴턴이 마무리 지은 근대 사회에서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제1 기준은 바로 '이성'입니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잘나빠진 이 인간이 수 십만의 동족을 살해하고 귀중한 유산을 파괴하는 폭력적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른다면, 이걸 과연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부조리 문학이, 그저 비뚤어진 지식인들이 만든, 대단히 모호하고 난해한, 현대 사회의 '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조리는 말이죠, 이 개같은 세상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삶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요사리안에게 전쟁은 사지가 날아가고, 사방으로 피가 튀고, 포탄 소리가 요동치는 현실이었지만 캐스카트 대령과 그 밖의 장군들에겐 승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가장 많이 죽였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고 승진을 합니다. 본국의 군수품 제조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이 회사에 투자한 부자들은 다시는 맞을 수 없는 호기를 누립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완벽한 비지니스죠. 그들에게는 이 아수라장을 멈출 이유가 전혀 없어요.저는 아귀를 만나기 위해 굳이 지옥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귀는 우리 옆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지옥이에요. 알베르 카뮈는 '현재를 체험한 자만이 지옥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부조리 문학의 대가였던건 결코 우연이 아니죠.



진정한 인간. 카뮈.



부조리 문학의 매력은 비논리와 비문이 얽히고 설키는 가운데 불현듯 번쩍하고 진리가 나타나는데 있습니다. 그 날카로움은 정말 섬뜩할 정도에요. 다음은 요사리안이 군의관에게 찾아가 자신이 미쳤기 때문에 더 이상 폭격을 나갈 수 없다고 알리는 대목입니다.


"난 돌았어. 미치광이지. 이해가 안 가? (중략) 난 진짜 정신 이상이야."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해를 못하는 다네카 군의관의 무능함에 요사리안은 어리둥절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나? 이젠 자네가 내 전투 임무를 면제시키고 날 고향으로 보낼 수 있어. 그들은 미친 사람을 죽으라고 내보내지는 않을 거야, 안 그래?"


"그럼 미치지 않았다면 누가 나가지?" (캐치-22 2권, 160p. 민음사)


광인이 진실을 말하는 세상이라면 미친건 세상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요사리안은 미쳤지만 미친게 아니에요. 부조리한 세상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겁니다. 대단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무슨 말인지 다 아실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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