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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나 자신을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할 땐, 내 주변에 친구가 없다고 느낄 때다. 창의력이란 별다른게 아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 반대로 생각하는 것.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매사를 낯설게 느끼는 것. 이 모든 것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옆에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따뜻한 봄날의 아침에서 죽음을 부르는 권태가 느껴진다고, 물을 마시면서 동시에 오줌을 싼다고, 수박은 숭고하기 때문에 하루에 정확히 두 쪽씩만 야금야금 먹어야 한다고' 말해 보자. 정중한 사람이라면 '아 네 그러시군요'하고 다시는 당신과 얘기를 하지 않으려 할것이고, 대개는 '어디 아프냐?'라고 할 것이며, 성스러운 사람들은 당신을 치유하기 위해 기도를 올릴 것이다. 중요한건 이 세 부류중 어디에도 진짜 당신의 친구는 없다는 사실.
창조의 순간엔 언제나 내적 필연성이라는게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건 그것이 보기 좋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고, 역시나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다'. 물론 하나님은 내적 필연성만 가지고도 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 분은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내적 필연성에 더불어 외적 필연성을 갖다 붙여야만 모두에게 인정받는 창조물을 만들 수 있다. 뭔가를 만들게 하는 동기는 돌발적이고, 직관적이며 불가해한 면이 있다. 크리에이터들은 그 작은 알갱이를 가져다 언어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입혀 세상에 꺼내 놓는다. 그런데 그 언어와 그림과 노래는 '설득력'을 가져야만 한다. 모두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외적 필연성이다. 그런데 이 외적 필연성이란 것은 언제나 근사한 모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짝반짝 빛나던 내적 필연성, 당신에게 창조를 명한 그 착하고 귀여운 소녀는 미숙한 외적 필연성으로 인해 괴물같은 털복숭이로 성장한다. 으악! 하지만 당신의 눈엔 아직도 콩깍지가 씌여 있다. 사람들은 털복숭이를 보고 괴물이라고, 정직하게 충고하지만 당신에겐 그 모든 사람들이 무지하고 천박한 대중으로 보인다.
으아니 늬들이 예술을 알아?
그래서 모든 창조자는, 고독하다.
에고의 화신, 치열한 고민, 더러운 성격, 짜증나는 히스테리, 잘린 귀, 더러운 마루 바닥을 구르는 가난, 발 뒤꿈치에 매달린 고뇌, 심장에 새겨진 흉터, 어깨에 앉은 우수, 아티스트를 상징하는 모든 궁상맞고 우울한 찌꺼기들이 이 책엔 없다. 저자의 목표를 들어보자.
'나는 소설가이자 방송인이자 시나리오 작가로서 한창 현업에서 뛰고 있기에 이책에서는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했다. (중략) 이 책이 나와 같은 동료 크리에이터들, 또는 그런 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까지는 몰라도 한 끼 별미 정도는 되었으면 한다. 가격도 딱 그 정도이니.'(p. 7)
이재인은 소설가로 등단하여 영화판에서 시나리오를 쓰다 SBS 라디오 '컬투의 두시 탈출'을 연출하고 있는 방송국 PD다. 그는 베테랑 작가이며 대중의 사랑을 쟁취한 성공적인 대중예술가다. 대중예술의 최전선에서 펼쳐지는, 그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프로페셔날리즘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를 보는 것처럼 스피디하고 톡톡튄다.
이 책엔 예술에 대한 골치 아픈 고민, 당신을 기어이 우울의 늪에 빠뜨릴 그 개떡같은 감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재익은 약삭빠르고 명민한 대중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재익은 예술 혹은 예술같은 일을 하면서 스포츠카를 몰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준다. 21세기를 크리에이터로서 '살고 싶은' 사람, 동시에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이재익의 명민함은 괜찮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대중예술가가 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여, 이 책을 보라.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