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ㅣ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진중권이 진영의 불분명함과 무한의 딴지 걸기로 네티즌의 뭇매를 맞을 때도 나는 그를 존경했다. 그가 쉽게 쓰기의 달인이었기에. 사람이 모든게 완벽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가 그렇게 얘기하는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진중권이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를 재수없고 짜증나는 똘똘이 스머프쯤으로 여긴다. 미치겠네, 미학 오딧세이나 서양미술사를 한 번 읽어 보라고. 잘난척하느라 집어든 곰브리치나 에코의 책 보단 훨씬 재밌을 테니까.
그런데 이 책, 쉽지 않다. 진중권이 한계를 드러낸건가? 그건 아니다.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런 문제가 뭔가? 현대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양식'은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간 지속되는 안정적인 조형의 형식이었다'(5p)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양식은 여름철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격동의 마술을 연출해 낸다. '짧은 시간 존속하다가 곧 다른 것들로 교체되는 복수의 양식들의 어지로운 겅존, 그것이 바로 '모던'이라는 시대의 특징'(5p)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현대 미술은 너무나 복잡하다. 어지럽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구분지을 수 없다. 폭발할듯 피어났다 안개와 같이 흩어진다. 뿐만 아니라 양식에 철학이 포함된다.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외부 세계를 묘사하길 거부했다. 미술은 더 이상 자연의 모조품을 생산해내는 조악한 공장이 아니다. 그런데 시각적 예술이 무언가를 묘사하길 그친다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감정을 그리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색을 만들어 낸다. 공간을 그린다. 관념을 그린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위대한 예술을 행위한다.
'20세기에 등장한 예술운동은 저마다 선언과 강령을 발표하며 정당운동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수사를 구사하곤 했다'고 한다. 이것이 현대 미술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20세기에 이르러 미술가들은 원하나 네모 하나 또는 모조리 검게 칠한 캔버스를 들고 나타나 이것이 회화의 근원이라고 우긴다. 우기기 위해선 철학이 필요하다. 보잘것없는 캔버스를 가리기 위해 수사를 입혀야 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현대 미술은 그저 말빨만 앞세운 멍청이들의 놀이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도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20세기 예술가들의, 과거와 철저히 결별하려는 그 눈물겨운 투쟁을 보고 있으면 그것을 감히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어지간히 회의적인 내게도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예전의 예술이 더 쉬웠다. 그저 손재주를 가진 젊은이가 공방에 들어가 몇년 씩 수업을 쌓는다. 그리고 독립해 화가가 된다. 그당시의 예술혼은 우리가 생각하는것 만큼 고귀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기 기술'에 대한 장인 정신과 동의어였다. 그들은 기술자였다. 결코 철학자가 될 필요가 없었다. 보이는 그대로 그리면 됐고 누가 더 똑같이 그렸는가로 평가를 받았다. 귀족과 왕궁의 후원을 받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직업인이었지 예술인이 아니었다. 화가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20세기에 화가들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다. 시민은 선악과를 따 먹었고 비로소 '자아'를 알게 됐으며 여가를 가졌고 그것을 채워줄 뭔가를 갈망했다. 화가들은 대규모 스포츠와 박람회와 사진과 싸워야 했다. 무지한 부르주아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 안에서 다른 누군가와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야만 했다. 옆에서 누군가 검은 사각형 하나를 그려 놓고 그것이 회화의 근원이라고 얘기한다. 예술계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사각형을 창조한 예술가는 화려한 수사를 갖고 있다. 나조차도(당시의 미술가) 쭉 듣고 있자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마돈나나 동산을 똑같이 베껴 그리며 만족하겠다고? 꿈도 야무지지.
현대 미술은 파괴와 저항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안주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나아갔다. 체제를 거부했다. 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빗장을 건 것은 파시즘과 나치즘, 전체주의적 코뮤니즘이었다. 그들은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 튀어나온 가지들을 쳐내야 했다. 자유? 반항? 상상력? 그것은 반체제다. 탄압의 정도는 그것의 위대함과 비례한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은 상상력을 두려워 한다. 상상력은 생각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생각이 살아있는 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
과거의 예술이 저항적이었다면 그것은 예술계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주류 미술에 대한 반감. 미술 권력에 대한 항거. 아주 아주 협소한 토라짐. 그러나 현대 미술의 분노는 사회를 향한다. 정치에 항거하고 통치에 반대하는 사상의 향연. 풍부한 상상력과 저항의 정신이 예술에 깃들어 있고, 그것이 대중과 결합하는 날 그들만의 제국은 무너져 버린다.
20세기 미술은 하나의 거대한 정신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영적이고 숭고하며 신비하고 난해하다. 나는 그 난해함으로 인해 현대 미술은 그 소재와 주제를 떠나 어떻게 해석되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라 여겼다. 검은 사각형 안에서 지옥을 보든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보든 그건 전적으로 나의 자유다. 그것이 현대 미술이니까. 아! 나의 이런 생각은 얼마나 순진했던가. 현대 미술의 이해를 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머리가 모조리 뒤집혀 버리는 고통의 순간들.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거대한 철학을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