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처럼 사고하기 -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 37인이 생각하는 마음, 생명 그리고 우주
에두아르도 푼셋 & 린 마굴리스 엮음, 김선희 옮김, 최재천 감수 / 이루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이 뭔가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가장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뷰일 것이다. 말과 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글은 어렵고 수사적이다. 말은 쉽고 직접적이다. 물론 글은 아주 탄탄하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가 아닌 이상 글은 매우 구조적이고 안정적이다. 반면 헛소리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은 체계적으로 뱉기가 어렵다. 말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둥근 공 같다. 하다보면 어느새 삼천포, 도대체 무슨 얘길 하다 여기까지 온거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게 바로 말이다. 그리고 인터뷰는 '말' 이다.


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말은 헛소리가 될 수 있다. 인터뷰는 말이다. 고로 인터뷰는 헛소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인터뷰를 책으로 엮을 때 말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법은 없다. 거기엔 편집의 마술이 숨어 있다. 두서 없는 말은 자르고 잘못된 문법은 바로 잡는다. 그러니까 인터뷰는 말이 찾아 놓은 반석 위에 구조를 더하는 것, 즉 말과 글의 하모니인 것이다.



과학자처럼 사고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학이나 생물학이나 화학이나 물리학 기타 등등 여러 과학들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내 보기에 모든 과학은 근본적으로 같다. 무언가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증명하고 검증하고 반증하고 기타 등등! 이 모든 일들이 과학적 탐구라는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모든 과학은 근본적으로 같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느냐, 다른건 현상일 뿐이다.


자 그럼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라는 책이 나온 이유는 뭘까? 이 책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과학자가 될 수 있는지 도움을 주는 책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은 교양서로 포지셔닝 할 것이다. 교양이다. 이른바 Liberal Arts! 그렇다면 이 책은 과학적 사고의 보편성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살펴보자. 우리의 주변엔 얼마나 많은 의문이 잠자고 있는가. 살아간다는 건 이 질문들에 하나 하나 자신만의 해답을 내놓으며 나아가는 과정이다. 마치 실험실 속의 과학자처럼 말이다. 원리는 이렇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철학서인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37명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일과 일터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37명의 과학자 중에는 제인 구달(침팬지 아줌마),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대니얼 길버트('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의 저자)처럼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이 책의 저자 린 마굴리스, 에두아르도 푼셋을 비롯해 유진 처드노프스키, 니콜라스 가르시아처럼 생소한 이름이 더 많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가 네임 밸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생소한 과학자의 연구 결과는 그 이름만큼 생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신기하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신경학자 새폴스키가 언급한 기생충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과연 전략적 사고와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만의 능력인지,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함을 인정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하게 된다. 


이 기생충은 번식을 위해 고양이의 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인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 쥐를 중간 통로로 활용한다. 이 놈은 우선 쥐의 몸 속에 들어간 뒤 그 뉴런이 작용하는 과정을 방해해 '쥐가 고양이에 대한 시각적 공포를 잃어 버리게' 만든다. 이 다음 과정은 정신나간 쥐가 섹시한 고양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다 그녀와 영원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양이의 내부에 침입한 기생충은 그 안에서 행복하게 번식을 한다. 



과학자들은 인간 이외의 생물 연구를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개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과정에서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볼품없고 열등한 존재인지 깨닫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저 혼자만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 오만한 미소를 띄는 과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란 정교하게 돌아가는 생명의 시계 속에 자그마한 톱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 들인다.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같이.


37명의 과학자들을 쭉 보면서 느낀 또 하나의 감탄은 그들의 다학제적 배경과 연구다. 앞에서 말한 새폴스키는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지만 그는 하버드에서 인류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책에선 사회학의 향기가 난다. 역시 독창적인 연구 결과는 서로 다른 학문간의 연계를 통해서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바로 그것을 찾아내는 순간 더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연구 성과. 이 책의 감수자가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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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북 2012-04-1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 그러니깐 대학때까지 솔직히 10권(소설 포함)도 채 읽지 않았던,, 오로지 교과서만 봤던 제가 늦게나마 이제 독서에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힘든 직장생활속에서 새벽 2-3시까지 수험생마냥 책을 읽은지 이제 5개월째인데요. 이제 5개월가지고 생색내는거 같지만 독서 방법이 잘 못되서 그런지 생각의 폭이 전혀 넓혀지지 않은거 같습니다. 주로 인문학 책 위주로 역사, 철학, 고전 등을 보는데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저도 막연하게나마 40대초반에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서 그럽니다. 여튼 오늘도 어김없이 알라딘와서 눈팅 하다가 님 서재에 왔는데...잠깐 리뷰들 몇개를 봤는데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어쩜 이리 생각의 폭이 깊고 글을 맛깔스럽게 쓰시는지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간단하게 나마 독서법이나 생각 넓히기, 글 잘쓰는 비법? 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여기다 써도 되죠?^^)

한깨짱 2012-04-20 13:05   좋아요 0 | URL
진지한 댓글에 누가 되지 않는 말을 하기 위해 답글이 늦었습니다. 새벽 2-3시까지 독서 수행을 하시다니! 그 행동 자체만으로도 존경 받을 만 합니다. 진심이에요.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건 3년 쯤 된 것 같습니다. 매일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글쓰기 연습을 했습니다.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통근길에서는 책을 읽었고요. 이렇게 매일 했지만 일주일에 1,000~1,500자 되는 글을 딱 한편 쓰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그런데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자 분명히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을 잘 쓰게 됐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제 글은 형편 없어요. 단지 글과 조금 더 친해졌달까요?

전 개미처럼 한 알 한 알 흙을 옮겨 집을 짓기를 좋아합니다. 노력의 크기만큼 초조와 불안도 커지기 마련이지만 개미들은 결국 왕국을 만들어 냅니다. 팜북님의 의지도 분명 오늘을 극복해내 실 수 있을 겁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네요.

팜북 2012-04-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큰 도움과 위안이 됐습니다. 님도 3년이 걸리셨는데 이제 5개월 째인 제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성격이 워낙 급해서 뭔가 눈에 빨리 보여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그럼 블로그에 글쓰기 연습하신거가요? 아님 따로 노트에 필기로 하신건지요? 전 이제껏 쓰지는 않고 독서만 했는데 이제서야 독후감 비스므리 하게 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갤럭시 노트로 시작해서인지 가속력이 붙질 않더군요. 그래서 따로 노트로 필기를 해야하는지 고민중입니다. 아 그리고 여기 리뷰보고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주문하고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대됩니다. 저도 이 책을 기준으로 당장 조금씩이라도 글쓰기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뭐든지 뚝심이 있어야 되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