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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과학 - 세종마케팅총서 1
파코 언더힐 지음, 신현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쇼핑의 과학이 제안하는 '고객을 사로잡는 9가지 성공 법칙'은 다음과 같다. 나는 여기에 나름대로의 사례와 논평을 추가한다.
법칙1.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하라
당연한 말이겠지만, 손이 자유로울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상품을 집어들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싶은 모든 매장은 우선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부터 강구해야 한다.
오늘날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 매장들은 입구에 락커룸을 설치함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 쇼핑 카트는 또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사실 카트의 위대한 점은 바로 거기에 아이들이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아이들은 가방이나 목도리, 책이나 코트와는 달리 락커룸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카트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이가 카트에 앉아 있는 이상 어른들은 매장을 휘젓고 다니며 물건들을 쏟아 버리는 아이의 뒤를 쫓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신이 짐짝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그 곳에 앉기를 좋아한다.
카트와 락커룸은 현재로서도 제법 괜찮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두 가지 점에 있어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명품 가방과 애완견을 보관하는 일이다. 명품 가방을 락커룸에 보관하는 것은 너무 불안하다. 그렇다고 300만원짜리 명품백을 당근, 파, 마늘을 함께 넣었던 카트에 올려 놓으라고? 애완견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명품 가방만큼 소중한게 애완견일 것이다.
법칙2. 고객의 동선에도 법칙이 있다
쇼핑의 과학은 극단적으로 말해 상점에 들른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고객이 어디로 향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당신의 장사는 이미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고객은 어디로 향하는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이 단순한 법칙은 지구상 대부분의 인간들이 오른손 잡이라는 단순한 사실과 관련이 있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이 사실을 간단히 알아채지는 못했다. 이제 당신은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매장 입구 오른쪽에 '신사복 매장'을 설치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고객의 80%가 여성인 당신의 백화점에서 말이다.
간단한 사실 하나 더! 사람은 앞으로 움직인다! 인류는 이집트 상형 문자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게걸음을 걷지 않는다. 인간의 눈은 앞을 지향하고 두 다리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상품들이 복도를 따라 옆으로 진열되어 있다! 상품들이 약간 비스듬히 그러니까 앞으로 걸어가는 고객들에게 적당히 노출 될 수 있을 만큼 기울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줄지어 늘어선 상품들은 고객의 심장을 두방망이질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법칙3. 광고의 생사는 1미터로 결정된다.
한 마디로 매장 입구에 광고판을 설치하지 말라는 얘기다. 매장 입구는 고객들에게 그리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느긋하게 서서 광고판을 읽을 여유는 없다.
당신의 광고판을 입구에서 고작 1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해 보라. 입구의 혼잡함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이제 여유를 찾고 매장을 둘러 보기 시작한다. 광고가 위치해야 하는 곳은 고객이 다른 것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안락한 장소여야 한다.
얼마전 버스에서 QR 코드 광고판을 본 적이 있다. 이 광고판은 무려 버스 뒷문에 위치해 있었다! 하차를 위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스마트폰 App을 실행해 QR 코드를 찍는다고? 넌센스 오브 넌센스다.
법칙4. 고객의 본성에 섣불리 도전하지 말라.
본성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독자를 위협하지만 사실은 별 내용 없다. 만약 창틀이나 장식용으로 설치한 화단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면 당신의 매장에 지금 당장 의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고객이 편안히 쉴 수 있다면 쇼핑으로 지친 그들은 의자에 앉아 기운을 회복한 뒤 다시 맹렬한 쇼핑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고객은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완벽한 촉감의 극세사 이불을 파는 주제에 그것을 비닐로 꽁꽁 싸매고 있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상품이 팔리지 않거나, 고객들이 남몰래 비닐을 찢어 이불을 만져 보거나!
법칙5. 남성은 마음 편한 쇼핑을 원한다.
스탠포드 MBA 출신인 로이 레이몬드는 부인에게 속옷 선물을 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백화점 속옷 매장에는 부끄러워서 갈 수가 없었다. 이때 로이가 얻은 아이디어가 고급 속옷을 사러 갈땐 고객이 변태처럼 느끼면 안된다는 거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매장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77년, 4만 달러의 은행 대출금과 함께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을 만들었다. 로이는 첫 해에만 5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5년 뒤인 1982년 The Limited에 회사를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400만 달러였다.
법칙6. 여성은 고급스런 쇼핑을 원한다.
여성은 고급스런 쇼핑을 원한다. 지금 당장 명동 롯데 백화점에 들러 명품관을 찾아 보라. 정장을 입은 떡대 한명이 매장 입구에 서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다.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입구의 떡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다. 여성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무때나' '아무나' 구경할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님을 학습한다. 기다림의 불편이 '특권'으로 대치된다.
법칙7. 작은 것은 불편하고 큰 것은 아름답다.
이는 점차 소비 세계의 주류로 떠오를 실버 세대를 위한 법칙이다. 이들의 쇼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게 뭘까? 우선 모든 활자의 크기가 너무 작다. 실버 세대들은 오메가-3와 두통약, 키토산 알약의 효능과 유효기간을 살펴보기 위해 200배줌 현미경을 들이 밀어야 한다. 옛날 우리 말에 노파심이란 말이 있듯이 실버 세대는 대체로 걱정이 많다. 그들이 만약 약병에 적힌 설명을 읽지 못한다면, 실버 세대들의 노파심은 결코 그 약을 구매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법칙8. 아이들의 쇼핑: 쇼핑은 상품과 노는 것이다.
맞벌이가 주류가 됨에 따라 가족의 쇼핑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엄마의 직업은 가정주부였다. 가정주부는 가족이 등교와 출근을 한 틈을 타 쇼핑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나 아빠 모두 출근을 한다. 이에 쇼핑은 주말에 가족 모두가 떠나는 즐거운 산책이 되었다.
아이들의 넘치는 호기심을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만지려'한다. 그런데 세상에 아이들을 위한 콘푸로스트가 매대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콘푸로스트가 아이들의 손이 닿는 아래쪽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곧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파란 상자를 들고 부모에게 달려가 조르기 시작할 것이다.
요새 몇몇 대형 서점을 둘러 보면 어린이 도서 코너의 차별화된 디자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곳은 서점을 통틀어 유일하게 '코너 안에 의자'가 배치된 곳이다. 의자는 코너의 가장자리를 쭉 둘러싸 그 안 쪽은 광장을 형성한다. 광장의 바닥은 딱딱한 대리석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고무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뛰거나 앉거나 눕는다. 부모들은 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감시할 수 있으며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책을 읽어 줄 수도 있다. 어린이 도서 코너는 거의 놀이방에 가깝다.
법칙9. 쇼핑은 체험이다.
쇼핑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다. 쇼핑은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보고 냄새맡는 오감의 체험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온라인 쇼핑이 결코 오프라인 쇼핑을 대체할 수 없을 거라 말한다. 반박할 충분한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형 매장들의 엄청난 성공을 돌아봤을 때 - 그들은 시식 행사를 열고 화려한 광고판을 설치하며 과감히 포장을 뜯어 고객이 사용해 볼 수 있게 한다 -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이다.
현실 세계의 매장은 고객에게 접촉과 즉시 만족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해당 물건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떤 맛을 내는지, 무슨 향이 나는지 직접 경험하며 오랜 기다림 없이 즉시 구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오감의 퍼포먼스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패키지 디자인>
따지고 보면 쇼핑의 과학은 고객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행동 패턴을 파악해 그것을 충동구매와 연관시키려는 전략적 속임수를 뜻한다. 저자는 매출 증대의 핵심이 충동 구매에 있다고 믿는다. 샘숭전자의 갤럭시S를 1+1으로 파는 대국의 시민답다.
쇼핑의 과학은 출간된지 벌써 10년이 지난(한국에서만), 초판 34쇄의 명작답게 오프라인 매장 운영 전략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만약 당신이 퇴직을 앞둔 회사원이라면, 그리고 장사라고는 털끝 만큼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나 막연히 치킨집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감동을 받은 건 쇼핑의 과학이 아니라 그 과학을 도출해 내는 과정 이었다. 2만 시간이 넘는 비디오를, 그것도 초고속으로(슬로우 모션으로 찍는다는 얘기) 촬영하여 고객의 행동과 매장을 꼼꼼히 기록하는 장인 정신. 아마도 인바이로셀(쇼핑의 과학을 연구하는 저자의 회사)에는 '내 생각에는 ~하니 ~할 것 같다'같이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사원은 없을 것 같다. 철저히 데이터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그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해석하는 강박적 꼼꼼함.
이 책에서 뭔가 배울게 있다면 그건 확실히 '쇼핑의 과학'은 아니다. 그 과학에 이르는 '길'. 오히려 이 부가 정보가 100배 더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