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7
손무 지음, 유재주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 같은건 없다. 전투의 승패는 어쨌든 반반이다. 손무는 승패에 아주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승리의 조건을 끈질기게 찾아 모으고 패배 조건을 부지런히 몰아내 승패의 확률을 계산하는 세심한 투자자였다.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말엔 어딘지 모르게 '이 한 판에 내 돈 전부와 내 왼 손모가지를 걸겠다'는 노름꾼의 피비린내가 난다. 손무는 그렇게 호기만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지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수 있다고 한 적은 없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손자병법의 핵심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라는 것이다. 손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용병법이란 적국을 온전히 취하는 것을 최상으로 하고 싸워서 취하는 것을 그 다음으로 한다.  

전쟁을 벌이는 일은 어쨌든 양쪽 모두에게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전쟁은 이 땅 위에 상처와 원망을 쌓아 놓는다. 그로인해 피폐해진 땅이라면 비록 승리해서 빼앗은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손자의 부전승사상(不戰勝思想)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역시 머리를 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공(謀攻)이다. 그리고 모공의 첫째 목표는 적국의 전쟁 의도를 분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국의 전쟁의도는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건 바로 적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면 된다. 그리고 그건 대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조조는 대교와 소교를 차지하기 위해 오와 전쟁을 벌였고 부시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내가 가진걸로는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없을 땐 다른 방법으로 적국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게 바로 이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는 외롭고 다수는 편안한 법이다. 적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제 3국을 적국으로부터 단절시키면 적은 고립되어 약해진다. 고립되고 약해진 적은 결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공명이 천하의 평화를 위해 세 나라가 필요하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에는 또한 '만전(萬全)'이 있다. 만전은 전쟁을 하기 전에 미리 모든 준비를 해둔다는 뜻이다. 평상시에 국경을 튼튼히 지키고 정기적으로 군사를 훈련시켜 그 기강을 바로잡는 다면 결코 적국의 표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은 군사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또한 경제력의 싸움이기도 하다. 손자병법에는 십만의 군사를 하루 움직이는데 필요한 돈이 천금이라고 했다. 정치를 바로하여 백성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고 거기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부숴진 성과 병장기를 보수하고 말과 군사를 먹일 식량을 쌓아 두면 비로소 만전의 태세가 갖춰지는 것이다. 따라서 만전이란 정치, 군사, 경제를 포괄한 광범위한 국가 전략을 말하는 것으로 손자는 이를 두고 '이기게 해놓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공과 외교가 실패하고 만전의 위엄도 녹록치 않을 땐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 반드시 속전으로 끝내야 한다. 아무리 큰 나라라도 전쟁이 길어지면 국력이 쇠하는 법이다. 군사들은 지쳐 고향을 노래하고 무기는 시들어 땅에 끌리며 재정이 바닥나 백성의 생활이 궁핍해진다.  

그건 적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라 행여 장기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하더라도 그 이득은 결코 크지 않다. 무너진 성과 굶주린 백성과 헐벗은 땅을 차지하는게 그 무슨 이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뿐만아니라 상처 입은 맹수는 들판을 떠도는 개에게도 먹이를 뺏기는 법이다. 

부전승, 만전, 모공, 속전 이상 네 가지 사상이 손자병법이 말하는 전략의 요체다. 이를 아는 사람은 백번 싸워 결코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영원을 전쟁의 진흙탕 속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사실 손자병법을 읽어 보면 당연하다 싶은 얘기만 잔뜩이라 심심할 정도다. 최근들어 손자의 사상이 기업의 경영 전략과 얽혀 들면서 이 책이 각광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놀랍게도 손자의 병법은 대부분 모략이나 이간, 용간(첩자를 이용함)을 위주로 한다. 이를 기업의 경영 전략과 엮었으니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 이야기만 가득했을까?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타자가 지옥'이며 삶이란것이 결국 남과의 투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면 손자는 인생의 최고 멘토고 그의 병법은 성서를 뛰어넘는 초성서다. 그러나 나는 손자가 전쟁광이 아니었음을 믿는다.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이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꼭꼭 문을 닫아 걸고 수성(守城)하는, 그리하여 피 한방울 보지 않으려는 안전빵 샌님의 냄새가 난다. 손자는, 어지간히도 싸움을 싫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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