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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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이 확고한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끝내 빛을 보고야 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실존주의나 니체를 뜻하는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철학이란, '누가 뭐라해도 자기 생각을 고집스럽게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도 다다오가 소형 주택 '스미요시 나가야'로 건축계에 데뷔했을 때 안도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목조 건물이 줄지어 있는 빽빽한 골목, 그야말로 한 뼘이라고 표현할 만큼 조그만 땅에 안도는 차가운 콘크리트 입방체를 그대로 끼워 넣었다. 집 안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그 좁은 건물의 3분의 1 정도를 할애해 중정을 만들어 놓았다. 이 중정은 지붕이 완전히 오픈된 곳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집주인은 서재에서 마루로 가는 동안 우산을 써야 했다. 그의 작품은 실용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건축 본연의 의의를 떠나 파인 아트(Fine art)를 지향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스미요시 나가야를 '건축가의 이기심에서 나온 집'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안도는 이 집이야말로 '주거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 건축이며 결코 예술 작품처럼 내키는대로 지은 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가 스미요시 나가야를 통해 내놓은 해답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그 넓지도 않은 집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정은 얼마나 낭비적인 공간인가. 하지만 나는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리면서 이 중정이라는 자연적 공백이야말로 좁은 집안에 무한한 소우주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동시에 중정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그 냉혹함까지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의 멋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인간에게는 존재한다.' p88 

안도 다다오는 자신이 기성 세대의 관습과 사상에 맹렬히 저항하며 살아가듯 자신이 지은 집에 살아갈 사람들 또한 거기서 오는 불편을 감수하고 완강하게 살아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계를 맡기러 온 고객에게 이런 말을 하면 대체로 절반 정도는 기가 죽어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안도는 미친 건축가였다.  

똑똑한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 승진을 하고 바보들은 직장을 나와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지만 미친놈들은 맨손으로 일어나 세상을 재패한다. 안도는 일반적인 관점에선 미친 건축가였지만 그 사상과 철학 만큼은 단단한 바위 같았다. 안도의 콘크리트 입방체들은 처음엔 극소수의 건축주들에게만 수용되었지만 그 어떤 건축과도 구분되는 확실한 존재감 탓에 도시는 곧 안도의 건축물을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안도 다다오의 '저항과 도전'이 비로소 도시의 삶 속에 단단히 뿌리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 노출 콘크리트 인가  

'저항과 도전'이 안도의 정신이라면 '노출 콘크리트'는 그 정신의 표현이었다. 사실 건축 소재에 있어 콘크리트만큼 따분한 소재는 없다. 한국의 주거문화를 완전히 망쳐놨다고 비판되는 집들이 바로 콘크리트 덩어리로 빚어낸 아파트라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사람들은 콘크리트가 뿜어내는 삭막한 풍경에 질식한다. 그래서 그 위를 유리로 덮거나 페인트로 칠하거나 각종 장식으로 치장한다.  

그런데 '노출 콘크리트'란 그 치장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 그러니까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붓고 그것이 굳자마자 떼어낸 순수한 콘크리트 덩어리다. 안도 다다오는 그 적나라한 속살을 그대로 건축에 활용한다. 심지어 내부 인테리어까지 철저히 배제된 채로 말이다.  

 

다양한 건축 소재가 일반화된 요즘에도 안도가 '콘크리트'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창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도에 따르면 노출 콘크리트는 '벽 안팎을 단번에 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제한된 예산과 대지에서 최대한 커다란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해결책'이다. 여기에는 건축물이란 건축가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엄연히 '사람이 살아갈 건물' 이라는 안도의 자각이 반영되어 있다.  

  

도시에 도전하는 건축  

주택 스미요시 나가야로 도시에 강렬한 방점을 찍어 넣은 안도 다다오는 이어지는 상업 건축을 필두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안도 같이 자의식이 강한 건축가가 상업 건축을 선택했다는 건 사실 굉장한 아이러니였다.  

당시 건축계에는 '상업에 아부하는 시설은 공공성이 없는 이른바 하등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고, 실제로 디자인도 겉만 장식하는 진부한 것뿐' 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상업 건축은 진정한 건축가로 불리길 원하는 사람들에겐 철저히 무시당하던 존재였다. 그러나 이 같은 업계의 편견은 기어이 안도의 반골 기질을 자극해 버리고 말았다. 안도는 상가가 즐비해 있는 상점가로 나가 또 한번의 반란을 꿈꿨다.  

한국만 그런줄 알겠지만 일본도 한 때는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옛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 위에 허세를 세우는 것이 근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안도는 당시로선 그 개념조차 생소한 '풍경 보존'이라는 의식에 입각해 최초의 상업 건축 '로즈 가든'을 짓기 시작한다.  

로즈 가든'은 고베의 오래된 주택가, 기타노마치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그곳은 메이지시대부터 외국인 밀집 지역으로 이용되면서 보통의 일본과는 다른 이국적 풍광을 유지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마구잡이식 개발의 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조만간 낙후된 시설에 대한 불만과 건축주의 상업적 목적이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와 수 십년의 역사를 흔적조차 없애 버릴 것이 분명했다. 안도는 자신의 건축이 그 파괴의 일익을 담당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감히 노출 콘크리트를 배제하고 벽돌로 로즈가든을 짓기 시작했다.  

 

 

 

상업 건축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효율'이다.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짜투리 땅이라도 어떻게서든 활용해 내는 것이 건축주의 바람이고 건축가의 의무다. 현대 건축은 이같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높이 높이 솟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발달로 인해 현대 건축은 엄청난 높이를 쌓아 올리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콘크리트를 배제하고 벽돌을 선택했다는 점, 그리고 건물의 높이를 주변의 건물들과 조화롭게 유지한다는 건 가히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는 스미요시 나가야와 같은 중앙 광장이 설치되 굉장한 공간 낭비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넌센스들이 건물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 거리에 우뚝 서게 만든다.  

안도의 작업은 고베의 오래된 주택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뒤이어 맡은 8건의 추가 건축은 로즈 가든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옛것의 소중함을 심어줬음을 암시한다. 안도의 고집스런 건축이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킨 것이다. 

   

안도라는 이름의 건축가  

오래전부터 건축은 예술에 속하는 장르였다. 한국에서야 건축학도하면 그저 공대생을 떠올리지만 외국의 경우 건축학과는 대부분 미대나 독립된 단과 대학으로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건축=아파트라는 도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선 예술의 향기 보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노가다가의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건축은 공간을 사유하고 그 안에서 삶을 빚어내는 미의식의 발현이다. 확고한 철학 없이 건축을 한다면 공간은 필연적으로 흉물스런 아파트의 향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근성이다. 속도와 생산성이 몰고 오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안도는 자신의 건축을 했다. 자신의 철학을 산다는 건 괴롭지만 걸어온 길 위에 길이길이 남을 족적을 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바다 위의 절벽은 거센 파도를 맞으면서도 수 천년을 버틴다. 안도의 건축도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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