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강의 프로이트 전집 1
프로이트 지음, 임홍빈.홍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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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다음은 인터넷 정신분석 카페에서 찾은 어느 직장인에 대한 얘기다. 

나는 내 상사가 지시하는 일들을 자주 까먹곤 한다. 아침에 직접 불러 지시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퇴근 쯤에 일의 결과를 확인하려는 질문을 받고 화들짝 놀라 당황한다. 

한편 이런 일도 있다. 나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제품의 시료를 자주 잃어버린다. 잘 챙겨야지 챙겨야지 하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시료는 사라져 버린 뒤다. 이 모든게 꼼꼼하지 못하고 게으른 천성 탓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설명하는데는 이 만한 근거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지시한 일은 반드시 수첩에 적었다. 수첩을 하루 종일 내 노트북 앞에 펼쳐 놓았다. 시료에는 이름을 적었다. 시료를 관리하는 바구니도 만들었다. 

몇일 
뒤 나는 내 시료가 또다시 사라져 버린걸 깨달았다. 잃어버린 시료를 찾아 사무실을 헤매는데 상사가 나를 불러 유럽향 모델의 진행 상황을 물어 보았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동시에 멋적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 질문이 이미 몇일 전부터 계속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내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남자는 그 날 이후로 정신과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몇 주에 걸쳐 진료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하루종일 눈 앞에 펼쳐둔 수첩을 두고도 지시한 일을 까먹은 이유는 내가 격무에 시달려 주의가 흩으러졌기 때문이 아니다. 시료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기어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시료 분실의 이유 또한 
잘못된 관리 방법에 있는게 아니다.

상사의 업무 스타일은 어지간히 나와 맞지 않았다. 일거수일투족을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꼼꼼함이 답답했고 말랑말랑 유연한 상황에서도 기어이 딱딱한 논리적 체계를 세우고마는 강박이 나는 지독히도 싫었다. 내가 매번 시료를 잃어버리고 상사의 지시를 잊은 이유는, 

내가 그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반복된 실수는 잠재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내린 상사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내가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때 마다 내 마음은 '당신이 시킨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실수는 심리행위다. 심리란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 행위란 '의지를 가지고 하는 짓'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실수는 심리행위다'라는 말에는 실수가 결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즉 그 속엔 명백한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위 이야기는 실수가 심리행위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전형적 사례다. 



<꿈>

나는 한 때 핵폭탄이 떨어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먼지로 사라져 버리는 꿈을 반복해서 꾼 적이 있다. 나는 눈 앞에 떨어지는 핵폭탄을 보고 미친듯이 도망쳤지만 결과는 언제나 매한가지, 먼지가 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꿈을 해석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시 나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한창 낙방을 거듭하고 있었다. 나는 골방에 쳐박혀 지겨운 영어 공부와 자기 소개서 쓰기를 반복했지만 취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초조와 불안이 꿈 속에서 핵폭탄과 지구 멸망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꿈 해몽가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그가 집중한 것은 꿈의 '해석'이 아니라 꿈의 '원인'이었다. 프로이트 이전의 사람들은 꿈을 뇌의 경련, 혹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해프닝 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실수 행위의 탐구에서 보여줬듯 프로이트는 꿈에도 명백한 의도와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프로이트는 꿈이 인간의 '소망 충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봤다. 그것은 꿈이 잠재된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인데,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꿈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도저히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 꿈 얘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핵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는 꿈을 반복해서 꿨다. 그것은 분명 취업에 대한 불안과 초조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난 이 꿈 얘기에서 몇 가지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내 꿈은 반복될 때 마다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재현됐지만 거기서 딱 한 가지 매번 변화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와 함께 죽는 친구들이었다. 모든 것이 똑같았음에도 유독 이 부분만이 달랐던 이유는 뭘까?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방법에 따라 차분히 나의 내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걸 고백하는 건 쉽지 않다. 만일 당신의 정신과 의사가 당신의 꿈 얘기를 듣고 이런 해석을 내렸다면 십중팔구 책상을 뒤엎고 병원을 뛰쳐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모두 열고 내면 깊숙이 
들어가 보자. 

처음 꿈에서 나와 함께 죽은 건 20년 가까이 사귄 죽마고우였다. 둘도 없는 내 친구지만 난 한 때 이 친구에게 심각한 컴플렉스를 느낀 적이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그 컴플렉스는 죽을만큼 괴로운 것이었고 
'이 친구가 사라져 버렸으면'하는 소망을 품곤 했다. 두 번째로 죽은 친구 또한 절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언젠가 일을 하다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화해하고 그 후로는 더욱 친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나는 앞으로 이 친구와는 절대 같이 일을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의 일을 모두 잊었고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무의식은 그 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다 나의 이성이 잠드는 시간을 틈타 당시의 불쾌한 감정을 꿈 속으로 밀어넣어 친구들을 살해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과격한 얘기라고 생각하는가?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언제나 이 같은 욕망들을 전제로 한다. 꿈의 내용으로만 봐서는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도 그 속에 잠재된 욕망들을 파해치고 나면 어김없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꿈은 도대체 왜 우리의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걸까? 그건 우리의 꿈이 검열을 당하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 많이 느슨해지긴 하지만 우리의 윤리, 도덕, 욕망을 억압하는 이성들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꿈은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을 상징하는 대체물을 만들고, 그것의 일부를 과장하고, 또 삭제하고 때때로 하나의 상징물로 압축하여 자신의 본 모습을 완전히 지워 버린다. 

꿈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왜곡된 상징의 필름들을 오리고 붙여 숨겨진 욕망을 현상해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경증에 관한 일반 이론>

프로이트가 실수와 꿈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것이 신경증과 매우 유사한 매커니즘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신경증에 관한 일반 이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글자는 분명 한글인데 봐도 봐도 미궁이다(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책을 반이나 차지하는 주제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채 이런 리뷰를 쓰고 있다면 그건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를 모독하는 일일까? 하지만 모르는건 모르는거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이 책에 대한 나의 얘기가 여기까지라는 거다.

p.s - 누가 이 책을 쉽다고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꿈의 해석'전에 이 책을 보라는 사람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꿈의 해석'을 봤기 때문이다. 조만간 그 책에 대해 써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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