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68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동양 역사상 최초의 근대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가 된 일본은 함대를 구성해 당시 무적이라 불리던 러시아 발틱 함대를 쳐부쉈다. 그리고는 제로센 비행기를 만들어 진주만을 습격했다. 이 일로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이 있은지 70년 만의 일이다.

이걸로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근대 자본주의 국가란 것의 위력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공자왈 맹자왈로는 굶주린 백성을 구하고 외세의 침략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로써 수 천년간 지배해오던 사고방식과 전통은 근대화의 쓰나미에 휩쓸려 폐허의 잔해가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만든것도 이 근대화의 쓰나미 덕분이었다.  



  



문제는 이 근대화라는 것이 사실상 서구화와 동의어라는 것이다. 근대화를 이룬답시고 받아들인 서구 문명은 동양인의 생활과 사고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 과정에서 동양적인 것=틀린 것, 서양적인 것=옳은 것 이라는 잘못된 공식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서구 문명의 잔인성과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만 이해하려는 성급함이 수 천년간 쌓아 온 전통과 지식 체계를 완전히 짓밟아 버린 것이다.

이렇게 넝마가 된 '동양식 사고방식'을 다시 주목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이었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동양식 사고방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다름'이란 각각의 고대 문명이 형성되는데 영향을 미친 생태, 정치, 경제적 환경의 차이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된 방법은 서양을 고대 그리스로 동양을 고대 중국으로 치환하여 비교하는 것이다. 
물론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단순히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차이로 단순화하는데는 많은 위험이 있겠지만 이 두 문명이 각각의 대륙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이는 완전히 잘못된 비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차이>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는 수 많은 도시 국가가 모여 형성된 섬나라였다. 사방이 바다. 경작지는 매우 적다. 이런 곳에서 먹고 살려면 사냥, 수렵, 목축 그리고 무역업이 적합했다. 이런 일들은 농업에 비해 사람들의 협동력을 
덜 필요로 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이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화목을 유지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개인적 의사와 욕구를 표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런 욕구들이 충돌했을 때는 적극적인 논쟁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논리학과 수사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반면 고대 중국은 사방이 땅이었다. 경작할 땅은 차고 넘친다. 그러다 보니 고대 그리스 보다 무려 2,000년이나 먼저 농경 정착 생활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농사라는건 단순히 따져봐도 타인의 손길이 절실한 일이지만 관개 시설의 구축이라던가 재해 복구, 방지를 위한 대규모 토목 공사를 두고 봤을 땐 중앙 권력의 통제와 지역 사회의 단결 없이는 절대로 불가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고대 중국인에게는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논쟁을 피하고 화합을 꾀하는 것)은 단순히 예의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생활 방식이었던 것이다.


<정치의 차이>


두 나라의 정치 체제 차이는 위에서 언급한 사고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이런 차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스는 수 많은 폴리스가 독립 국가 형태로 존재하는 일종의 공통 문화권이었지 하나의 통일 국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아테네가 싫은 사람은 얼마든지 다른 도시로 옮겨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소크라테스의 경우에도 죽기 전 망명 길을 떠나라는 제자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내 독배를 삼키고 말았다). 

이처럼 정치적 망명이 쉬운 사회에서는 국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않고 마음껏 발언할 수 있는 저항적 지식인들이 많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나라. 심지어 통치자라 할 지라도 도편추방제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인류 최초의 민주 공화국. 이 같은 자유의 보장은, 비록 흩어졌다 합쳐졌다 하기는 했지만 역사의 대부분을 통일된 전제국가의 지배로 채웠던 아시아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경제, 정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형이상학적 신념 차이>

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보자. 고대 중국인들이 경제적, 정치적 활동을 하기 위해선 밖으로 주의를 돌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야 했고, 한편으로는 위로 눈을 돌려 권력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처럼 끊임없이 사회적 상황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생활 습관은 '전체 맥락' 속에서 '나'를 파악하는 경향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을 사회적 의무와 인간 관계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네트워크 속에서 파악하면, 당연히 이 우주는 독립적이고 불연속적인 원자들의 결합이 아니라 연속적인 관계들의 유기체로 인식된다. 따라서 어떤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때에도, 개별적인 개체들의 내부 속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개체가 속한 전체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p.192)

반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은 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들의 주 산업은 농업이 아니었으므로 다른 사람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축을 칠 곳을 계획하고 어떤 상품을 어디에다 팔 것인지 결정할 수 있었다. 주로 서양인들의 강점으로 분류되곤하는 분석적, 논리적 사고의 발달은 바로 이런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적 사고의 특징은 현상을 파악함에 있어 사물 자체의 속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년 마을을 찾아오던 학이 더이상 오지 않았을 때를 가정해 보자. 이때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인들은 '마을 사람들이 부덕한 탓', 즉 학과 인간의 정서적 관계에서 이유를 찾는 반면 서양인들은 '학의 생태'를 파악하고 '마을의 환경 변화'를 고려하여 논리적 이유를 유추해낼 것이다. 둘중 어떤 문명이 더 '과학적'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겠는가? 이같은 형이상학적 신념의 차이가 서양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건 두 말할 필요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가 옳은가?>

그래서 누가 옳냐고? 이런 질문에는 역시 둘다 옳다는, 다소 맥빠지는 대답만이 정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인들이 과학이라는 불도저를 이끌고 문명의 발전에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앞세워 과학의 초석을 세웠고, 그 뒤로는 탄탄대로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들이 동양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똑똑한 머리로 만들어 놓은게 문명의 충돌, 종교 전쟁, 인종 청소라는 사실에 그 자신들도 질려버렸기 때문이리라. 발전은 더뎠지만 타인과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존중하는 동양인들의 사고 방식에 찌릿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동서양의 사고 방식 차이를 인종의 태생적 문제로 한계 짓지 않고 다양한 환경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그 차이에 대한 근본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보여준다. 책 내용 또한 쉽고 흥미로운 심리 실험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글로벌 시대에 남과 더불어 살아갈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