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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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에 당신은 우선 비독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비독서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다. 너무 당연한 얘기여서 심심할 정도다. 

둘째는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다.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생각.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다. 

이어지는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다. 이는 직접적으로 책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이 오로지 그 책에 대해 주워들은 경우를 말한다. 책 대신 서평을 
읽거나 광고, 소개글 등을 접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은 '분명 읽었지만 책의 내용을 잊어 버린 경우'다. 비독서의 네 가지 형태 중에서도 가장 모호하고 억울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심지어 그것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경우라면 그것을 읽지 않은 책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 따르면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것은 명백히 비독서에 해당된다.

책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가 이렇게 비독서를 구분해 놓은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것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물론 '차이가 없다'라는 말은 결코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책에 대한 담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어려우니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두 남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떨어진다. 한 남자는 재빨리 몸을 굴려 그것을 '피했다'. 한편 다른 남자는 그 순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떨어지는 자동차를 '피할 수 있었다'. 어떤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행위를 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은가? 이 경우 두 행위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차이가 없다'라는 것도 이처럼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자 여기까지 봐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이 따위 책 읽고 싶지 않아라고 소리치기 일보직전이라는 걸 알지만 당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간지나는 제목에 '혹'한 순간 이미 무슨 얘긴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됐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가 보자. 


 

 


책을 읽지 않았건, 대충 읽었건, 혹은 누군가로부터 들었든 심지어 전혀 책을 읽지 않았든 우리가 어떤 책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일련의 인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저자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일 수도 있고 책 제목에 대한 단순한 느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루키의 1Q84에 대해 얘기한다고 할 때 실제로 나는 1Q84를 읽어본 적도 서평을 본 적도 
그 내용을 누군가로부터 들은것도 아니지만 1Q84를 보는 순간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릴 것이고 당연히 그 책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덧붙여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으로 완전히 망가졌으며 
그의 소설에는 잡다한 판타지와 야릇한 에로티시즘만이 남아 있을 뿐, 1Q84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전혀 기대할 만한 소설이 아니다'라고 신나게 씹을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생각이 아주 심각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며 보지도 않은 책을 싸구려로 매도해버리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내가 1Q84를 자세히 읽고, 이 책에 대한 글들을 찾아본 뒤 결국 당신의 비평에 동의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아마도 논쟁은 직장을 잃고 토론은 땅 속에 묻혀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이 도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는가? 텍스트란 갑론을박, 끝없는 논쟁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창작의 가능성을 낳는 법이다. 그런데 당신과 내가 어설픈 합의를 보는 순간 이글이글 타오르며 폭발을 준비하던 해석의 다양성이 순식간에 멸종해 버렸다. 그런 다음 그것들은 모두 박제가 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 박물관의 지하창고에 쳐박힌다. 좀 더 올바른 행동을 한답시고 들인 노력이 오히려 텍스트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말살시킨 셈이다. 

물론 약간이라도 주의가 깊은 독자라면 분명 내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책을 자세히 읽으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비평에 다다를 것이라는 전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전제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수 십가지의 반론이 떠오르는 근거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쓸모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엔 우리가 두고두고 되새겨볼만한 의미심장한 얘기가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비평의 획일화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주워 듣고 하는 얘기든 아니면 내용을 잊어버려 횡설수설하든 이 모든 것들이 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내고 그로인해 비평의 세계가 더더욱 시끄러워질 수 있다면 그 방법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책을 자세히 읽는 것만이 비평의 무대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비평은 고도로 단련된 분석행위이며 그것은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고행이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자, 
대충 읽은 자 따위는 그 여행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말해 주면, 비평이란(=책에 대해 말하는 것) 결코 선생님이 불러주는 정답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받아쓰기 시험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것의 진위를 따지고 점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다. 

비평의 세계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은, 수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담론들을 비집고 그 사이에 오직 나만의 이야기를 끼워넣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보관되어 있다는 바벨의 도서관에, 영원히 반짝반짝 빛날 당신의 책 한권을 꽂아 두는 일과 같다.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해도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 끌린 사람들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책장을 덮을 테지만, 피에르 바야르의 관점에선 당신의 그런 행동 또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라. 심지어 이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당신이 다른 곳에 가서 이 책을 신나게 씹을지라도, 저자는 결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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