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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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되거나 절판되지 않고 살아 남은 커트 보네거트의 번역서 중 유일하게 에세이 한 권 있으니 그게 바로 이 책 '나라없는 사람'이다.

좋은 수필이란 작가의 문제 의식이 소설의 언어로 발화하기 이전의 생생한 감정을 담고 있기 마련이어서 이것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더 쉽게 이해하거나 나아가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들까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라고 하는건 너무나 평범하고 뻔한 문장이라 커트 보네거트를 기대하는 사람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으니 좀 더 커트 보네거트 식으로 말해보자.

75세인지 76세인지 어쨌든 지구에서 가장 멍청하고 폭력적인 동물의 평균 수명을 훌쩍 넘은 탓에 더 이상 좋은 농담도, 좋은 글도 생산할 수 없다고 생각한 노작가가 최후의 역작을 내놓았으니 그 책이 바로 타임퀘이크다. 그런데 이 책을 마지막이라고 선언한 노인네가 2년 후 단편집을 출간하고 거기다 아주 짧은 소설을 한권 덧붙였으며 심지어 그 6년 뒤 에세이까지 한권을 추가했으니, 미국 사람들은 이 책을 A Man Without a Country 라 불렀고 극동 아시아의 토끼모양 땅 덩어리에 살고 있는 옐로 몽키스들은 이를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됐수?
 

 

 

타임퀘이크의 뒷 작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더 이상 좋은 농담을 할 수 없었던 탓인지 나라 없는 사람은 타임퀘이크의 일부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가 하면 이미 한 번쯤 소설에서 언급했던 얘기를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술자리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주사는 테이블 위에 토를 해 놓는 사람이나 소파에 누운채로 오줌을 싸는 사람이나 친구의 뒤통수를 맥주병으로 때려 놓고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사람이라는데, 되풀이 하는 말이 워낙에 좋은 말이니 대충 좋게 좋게 넘어가 주자. 게다가 이 책을 쓸 때 우리의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는 여든 두 살이었지 않은가!

미국이라는 악당의 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건 정말로 축복이다. 아마도 미국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에 타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같은 의인이 살아남아 후세에 정의를 지키는 법을 가르쳐 줬기 때문일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가 스스로를 나라 없는 사람으로 부른 이유는 그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었음에도 결코 미국인처럼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웃과 친구들에게는 많은 비난과 야유를 받아야 했다.

미국인들은 세계 각지의 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그토록 증오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미국인이 멍청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싫어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거만하기 때문에 미워한다. 커트 보네거트도 떠나버렸으니 앞으로는 누가 이런 사실을 가르쳐 줄지 모르겠다.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 놨더니 친구 역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오래된 번역본들을 절판시켰고 남아있는 몇 권들마저 품절의 벼랑 끝에서 위태로이 떨게 만드는 망할 출판사들을 협박해 재판을 출간하게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나는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서울 시내 대형 서점 4곳을 동시에 폭파시켜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자고 했다. 나는, 필요하다면 충분히 감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해줬다.

물론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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