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하건대, 코맥 매카시 이후로 이렇게 빠져든 소설가는 처음이다.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고 재벌과 국가 지도층을 강도높게 풍자하는, 이른바 진보 주의적 사상이 나의 코드와 높은 싱크로율을 이룬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소설이 아주 웃기고 또 짧다는 사실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애써 숨기고 싶지는 않다.

그리하여 나는 '제 5도살장'을 거쳐 '마더 나이트'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를 경유한 뒤 마침내 이 소설 '고양이 요람'에 다다르게 되었다.  

 

 

 

'고양이 요람'은 커트 보네거트의 전매특허인 허무를 메인 디너로, 반전과 반기독교를 사이드 디쉬로 한 블랙 코미디다. 그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언제나 극단적인 인격 장애를 가진 캐릭터들인데,  

보라, 여기에도 어김 없이 정신병자가 등장한다.

펠릭스 호니커 박사. 원자 폭탄의 아버지가 되어 2차 세계 대전을 종결지은 이 천재 과학자는 원폭 실험을 지켜보던 동료가 '이제 드디어 과학이 죄를 알게 되었군'이라고 하자 '죄가 뭐죠?'라고 묻는 천진난만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펠릭스 호니커에게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 전혀 없는 셈인데 이것은 '마더 나이트'에 등장한, 유대인 600만명을 살해하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아이히만'을 연상케 한다.

펠릭스 호니커는 전쟁이 끝난 뒤 2만 6천 달러의 연봉을 받는 제네럴 단주조회사의 연구원으로 돌아간다.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의 손에는 노벨 물리학상이 들려 있었다. 가스실이나 시체 매립장 따위의 시설 투자 없이도 수 십만의 사람들을 눈 깜짝할 새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공로가 인정된 것이었다.

이제 과학계의 전설이 된 물리학자는 차기 연구 과제로 '아이스 나인(아이스-9)'을 발명하게 된다. 아이스-9은 수분과 반응할 경우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 버릴 수 있는 가공할 만한 물체였는데 펠릭스 호니커는 이것을 제조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빙결되고 이를 발견한 천재 과학자의 세 자식들은 아이스-9을 나눠 가진 뒤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난다.  

 

 

 

이들이 다시 모인 곳은 산 로렌조 공화국. 그곳은 세상에 대한 지독한 허무와 냉소를 표현하며 자기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거짓말이라고 가르치는 보코논교의 원산지였다.

보코논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의 발바닥을 문질러 정신적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일이 없는 산 로렌조 공화국의 국민들은, 펠릭스 호니커가 낳은 악마의 씨앗들이 자신의 땅을 밟는 것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철저한 보코논식 환영법이었는데 보코논교에 따르면 그들의 방문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지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 형제 - 큰 누나와 남동생 둘 -의 실수로 아이스-9이 바다에 빠지고 이로인해 온 지구가 얼어 붙게 되었을 때도 그들은 당연히 올 것이 온 것처럼 행동했고, 자연스레 아이스-9 한 조각을 각자의 입속에 넣었다. 

 

 

 

커트 보네거트가 자신의 문학을 통해 줄기차게 던지고 있는 문제 의식 즉, 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사람이라는 통찰은 '고양이 요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원자탄으로 14만명을 소멸시킨 펠릭스 호니커와 유대인 600만명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의 공통점은 그들이 타인의 고통에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이 무관심은 결코 악의적인 무관심이 아니다. 마치 전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처럼 그들은 선악을 구분할 줄 몰랐고 심지어 선과 악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핵폭탄의 트림으로 불타오를 14만의 영혼 앞에서, 펠릭스 호니커는 이렇게 묻는다. '죄가 뭐죠?'

'짹짹?'

버튼 하나로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은 절단된 사지와 불에 타는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 전쟁은 모니터에만 존재할 뿐 그 고통과 비명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말을 바꿔서 해볼까?

말 한마디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절단된 시민의 꿈과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 정치는 선거 기간에만 존재할 뿐 국민의 고통과 비명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정몽준이 서민 물가가 치솟는 것에 무관심했던 이유는 그가 특별히 나쁜 정치인이거나 새디스트였기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버스요금이 70원 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보코논은 예수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고 한 말을 이렇게 바꾼다.

'카이사르는 신경 쓸 것 없다. 카이사르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내일도 어김없이 무관심과 무지로 이 세상을 다스릴 모든 통치자들과 그 부하들에게 고양이 요람 100권 씩을 택배로 보내려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wired.husky@gmail.com으로 연락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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