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에는 데이빗 린치, 데이빗 크로넨버그, 데이빗 핀처, 아주 넓게 봐줘서 데이빗 보위까지 네 명의 데이빗이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를 연출한 것은 데이빗 린치고 컬트 영화 크래쉬(1996)를 만든 것은 데이빗 크로넨버그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데이빗 보위다. 그리고 데이빗 핀처는 소셜네트워크(2010)를 만들었다.

데이빗 핀처의 소셜네트워크가 공개 됐을 때 알만한 사람들은 기대와 흥분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1995년에 세븐, 1999년에 파이트 클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에일리언 3(1992)를 연출한 것도 바로 이 사람이에요 라고 말해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데이빗 핀처는 세븐과 파이트 클럽을 만든 사람이고 최근에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까지 거꾸로 보내버린 감독이다.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하버드 컴공생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고, 성공하고 돈 냄새를 맡은 인간들과 괴로운 소송을 벌이는 내용이다. 휘황찬란한 성공기가 아니다. 욕망과 성공에 눈이 먼 인간들을 관조하며 그 본성을 속살까지 드러내는 잔인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의 조명은 어둡다. 살인범의 이야기인 세븐과 정신분열자의 이야기인 파이트 클럽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이 무거운 조명이다. 카메라는 이 어둠 속에 들어 앉아 인간의 악한 본성을 포착한다.

소셜 네트워크가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밋밋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는 성공과 실패와 그리고 분쟁을 극적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산발적으로 이야기를 내뱉는다. 그래서 감정은 고조되지 않는다. 힘들게 올라간 롤러 코스터가 내리막길 직전에 멈춰 버린 느낌. 아니, 아예 오르막길까지 가는 평평한 레일 위를 달리다 만 것 같은 이 느낌은 그대로 관객의 마음 속에 남아 욕구 불만을 일으킨다. '이런걸 볼려고 8,000원이나 낸건 아니지' 하는 한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식의 전개가 이뤄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실제 페이스북의 성공이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의 대사처럼 '아직 이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페이스북은 세계 최고의 소셜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그들은 어디까지 클 줄 모르는 폭발적 성장기의 어린아이였으나 사람들은 자꾸만 잡아다 키를 재려 했다.

엔젤 투자자들이나 넵스터의 숀 파커는 칼을 든 도축업자였고 페이스북을 통제 가능한 울타리에 가둬 놓은채 이 돼지에 칼을 꽂아 한 몫 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내는 짧았고 결국 도살 명령은 내려졌다. 피냄새를 맡은 파리떼들이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야기 중간중간 끼어드는 소송 장면들은 이런 상황을 은유하는 듯 하다. 그것은 도축업자의 칼날이 살갗을 찍는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 여지없이 관객의 환상을 깨뜨린다. 데이빗 핀처는 그들의 성공이 아니라 사라져버린 꿈과 깨져버린 우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하는 주커버그의 심리에 집중하라고 강요한다. 

 

 

 

그런데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순결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이스북의 원래 아이디어를 윙클보스 형제로부터 제공 받은 것이 명백함에도 그는 '소스 코드는 온전히 나의 것'이며 페이스북을 만드는 일은 '자신에게 소송을 건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지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요구한다'고 거드름을 핀다. 이런 태도는 소송 과정을 엉망으로 만들고 그것을 지루하게 연장시키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원흉이 된다. 

그러나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떠벌이려는 욕망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심각한 컴플렉스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학창 시절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와 땅 팔아 부자가 된 사연을 주구장창 늘어 놓는 것 처럼 말이다.

사실 마크 주커버그는 컴플렉스 덩어리다. 영화 초반 주커버그가 에리카에게 - 에리카 올브라이트, 여자친구 - 쉴새 없이 떠드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자기 지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피닉스 클럽'의 부름을 받지 못한 Geek일 뿐이다.

그가 절친 에두아르도를(피닉스 클럽) 버리고 숀 파커를 따르기 시작한 것도 컴플렉스 때문이다. 주커버그는 숀 파커가 냅스터를 만들었고, 그 사실이 자신을 무시하는 세상을 엿먹이는 열쇠라고 믿는다. 실제로 숀 파커는 주변 사람과 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페이스북을 만든 자신 또한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이렇게 페이스북은 주커버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사회적 보호망이 된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로 불리는 한 그는 더 이상 별볼일 없는 Geek으로 취급받지 않아도 된다. 뿐만아니라 Facebook의 명함 뒤어 숨어 이렇게 상스러운 말을 지껄여도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 볼 뿐이다. I'm CEO, bitch!라고 말이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침울하고 어두컴컴한 이유는 페이스북을 둘러싼 소송과 갈등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페이스북 자체가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서 태어났다는 것 즉, 사랑받지 못한 자의 뒤틀린 욕망을 먹이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성공같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보장된, 이토록 흥분되는 소재에 아무 거리낌 없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건 데이빗 핀처 밖에 없다. 그가 헐리웃 자본으로 일하는 상업 영화 감독이라는 점은 이런 사실을 더더욱 놀랍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이번에는 데이빗 핀처도 별거 없었어'하고 단정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계기로 데이빗 핀처의 다음 영화를 선택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것이 데이빗 핀처를 작가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는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확고한 스타일과 철학이 있는 남자라면 다음 영화 아니 다다음 영화 아니 다다다음 아니아니 영원히 그의 영화를 기대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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