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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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하라 켄야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디자인의 디자인'의 저자라는 말로 이 남자를 설명하고 싶다.

특정 분야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무자가 자신의 업(業)을 설명하고 이론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유는 많겠지만 대개는 첫째,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둘째,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정리는 창조보다 귀찮은 일에 속하기 때문이며 셋째, 자신조차 자기가 발휘하고 있는 창조의 근원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셋 중 첫째를 핑계로 둘째를 디자이너 개개인의 성실도의 문제로 간주하더라도 마지막 세번째 이유, '자기 자신조차 창조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에는 실제 본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막막함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디자이너란 설명하고 주장하는 일보다 직접 만들고 보여주는 것이 훨씬 쉽고 또 그것을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다. 덧붙여 이론없이도 훌륭한 작업물을 내놓는게 바로 디자이너의 위대함인데, 뭣때문에 힘들여 이것저것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말이다. 물론 이 말에도 일리는 있다. 행동보다 말이 많은 이 세상에서 실무와 실용, 보이는것과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한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 만약 우리 세대의 디자인을 우리 세대만으로 끝낼 것이라면 이런 생각에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게 목적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그것은 반드시 이론으로 정리되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경험이라는 것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누군가 멈춰서서 음미하지 않으면 결코 축적되지 않는다. 축적된 경험은 후대의 이해와 손질을 거쳐 지혜로 탈바꿈하고 이렇게 숙성된 지혜가 바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는 것이 이른바 인간 역사의 진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상도 사실은 우리 전세대들이 축적해 놓은 유구한 전통이 발판이 된 것이다. 그때도 누군가는 이론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세의 강줄기에서 유유히 사유의 헤엄을 쳐왔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다음 세대의 진보를 잉태하고 있다.
 

 

 

'디자인의 디자인'에 소개된 많은 디자인 작업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리디자인 프로젝트'다. '리디자인 프로젝트'란 하라 켄야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건축, 제품 디자인, 시각 디자인,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디자이너들에게 '일상의 제품'들을 새롭게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주고 그 결과물을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하는 작업이었다.

사실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다시 디자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디자인이란 그 무엇보다 합목적성을 전제로 하는 작업이다. 만약 키보드, 성냥, 물컵 등이 다 비슷한 모양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면 그것에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우발적인 영감에 의해 창조된 것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그것들에는 수십, 수백 아니 수천년 동안 쌓여온 일상의 경험이 반영되어 오늘날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지혜와 경험의 결과물을 한 순간에 전복시키는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자칫 잘못했다간 우리의 선배들과 역사를 기만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제를 받은 디자이너들은 마치 이런 우려를 비웃듯 엄청난 디자인을 선보였다.
 

 

 

 위 사진은 반 시게루의 네모난 휴지심이다. 얼핏보면 변기를 제출해 놓고 '샘'이라 이름 붙인 뒤샹의 조크와도 닮은 듯하다. 그러나 동그라미가 네모로 바뀌면서 휴지는 적재가 용이해 진다. 뿐만아니라 적재시 발생하는 수납 공간의 손실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높아진 적재 효율성은 당연히 운송의 효율성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대가의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네모난 휴지심이 전해오는 메시지다.

상상해 보자. 보통의 동그란 휴지심이라면 휴지를 풀 때 아무런 저항이 전해지지 않는다. 잡아당기는 만큼 술술 풀려 원하는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네모난 휴지심은 풀릴 때 마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낸다. 바로 이 저항이 휴지를 낭비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작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처럼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환경 보호가 일상의 행위와 밀접히 관련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이것이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됨으로써 휴지를 아끼는 습관으로까지 발전 된다.

두 번째는 후가사와 나오토의 티백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티백에 고리가 달려 있다. 그런데 이 고리의 빛깔은 홍차가 제일 맛있어지는 시점의 색채와 비슷하다. 이게 바로 포인트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홍차의 맛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 둘간의 관계를 인식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고리보다 진한 편이 좋다거나, 혹은 오늘은 엷게 타서 마시자는 식으로' 색채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 나갈 수도 있다. 단순한 고리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낸 것이다.

다음은 멘데 카오루의 성냥 디자인이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끝에 발화제를 입혔다. 이것은 '땅에 떨어진 나무가지에게 지구로 환원되기 전에 마지막 일을 시켜보자'는 발상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는 생각이다. 게다가 나뭇가지 하나하나의 면면 또한 매우 아름답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물조차 섬세한 감성으로 낚아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의무인 것일까?

멘데 카오루의 성냥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미(美)를 디자인이라는 수단으로 세련되게 발굴해 냈다. 이로써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삶에 하나의 느낌표가 새겨진다. 

   

마지막으로 리디자인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하라 켄야의 '산부인과 사인(간판) 작업'의 결과물을 살펴 보자. 보통 사인, 간판이라고 하면 아크릴이나 플라스틱을 떠올리게 된다. 그 안에 전구가 하나 들어있고 밤에는 불을 내뿜는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방이나 벌레 따위가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장점은 이 플라스틱을 유일무이한 간판의 소재로 떠오르게 만든다. 그런데 하라 켄야는 이 사인에 백색 면(綿)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백색 천이란 그런거다. 마땅히 손을 대지 않아도 하루하루 쌓이는 먼지에 의해 자연적으로 때가 탄다. 검은 색이라면 쉽게 가려질 수 있겠지만 흰색 천은 먼지의 흔적을 숨길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천을 더럽히는 게 자연 오염인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이제 막 초콜릿을 먹은 손'으로 이 간판을 만질 것이다. 아니면 벽을 짚고 이동하는 산모가 땀에 절은 손으로 이 간판을 움켜 쥘 수도 있다. 이 때마다 흰색 천에는 오염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난다. 도대체 이렇게 귀찮은 짓을 왜 한 걸까? 


 

 

 

그러나 쉽게 더러워진다는 특성 자체가 바로 이 작업의 핵심이다. 병원이란 그 무엇보다 위생과 청결이 최우선 되는 특수한 장소다. 그런데 만약 흰색 천으로 만들어진, 쉽게 더러워질 수 밖에 없는 이 사인들이 언제나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만큼 병원이 청결과 위생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건 아닐까? 

 

 

 

이 책은 얼핏 디자인 전공자들이 읽는 관련 전문서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읽어 보면 디자인이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할 뿐 사실은 이 책이 인간과 사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라 켄야의 디자인 철학은 일상의 사물들과 멀리 떨어져 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뜬구름을 잡는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제품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것이 마치 타고난 센스, 탁월할 미의식 따위를 갖춰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의 세계를 아주 친숙하고 쉽게 정리해 준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라 켄야의 답을 듣는 것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수 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 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어쩌면 대가와 풋내기의 차이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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