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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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사람들은 글을 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노통의 신간 '겨울 여행'은 프랑스 전력 공사에 다니는 남자 조일이 자폐증을 앓고 있으나 천재적인 소설가인 알리에노르를 보살피는 천사 아스트로라브와 겪는 영혼의 쇼크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요약하면, 사랑 이야기.

조일은 직업상의 이유로 이제 막 이사를 마친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아스트로라브를 만났다. 한 눈에 반했다. 한눈에 반했다는 것, 그래 이거야 말로 인간사 그 캐캐묵은 문제 덩어리의 발상지임을 나는 이 순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조일과 아스트로라브의 사랑은 괜찮았다. 문제는 알리에노르였다. 아스트로라브는 한 시도 알리에노르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알리에노르는 자페증을 앓고 있었고 아스트로라브의 보살핌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알리에노르에 대한 아스트로라브의 애정은 강박적이었다. 그런데 키스를 나눌 때, 흥분한 남자가 이성의 고삐를 풀고 그 보다 더한 상태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꿈틀 거릴 때, 그럴때마저 이 강박적 애정이 발휘되어 알리에노르가 옆에 있어야 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심각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조일은 뭔가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정신적 거세법. 아스트로라브와 알리에노르를 떨어 뜨릴 방법은 없었기에 조일은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더러운 욕망이 관계를 파탄내지는 않도록 그는 아주 조금씩 욕망을 전진 시켰다. 그래서 평일에는 퇴근 후, 주말에는 조금 일찍부터 그녀의 집을 찾아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제한했다. 상으로 키스를 얻었다.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정신적 거세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은 심심하지만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형태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욕망이란 놈은, 더군다나 정욕이란 놈은 그 욕망의 주인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행동하며 깜빡한 순간 내 몸의 이성을 탄핵한다. 결정적 사건은 세 사람이 과테말라산 환각 버섯을 삼켰을 때 벌어졌다.  


 

 

<과테말라산 환각 버섯이 이 모양은 아닐거야. 출처: Flickr.com, kathrynivy.com> 

 

환각에 빠진 알리에노르는 바닥에 깔아둔 담요 위에서 깊이 잠들었다. 오예! Just the two of us! 아스트로라브와 조일은 환각 위에 떠오른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공유하며 서로의 뱃속에서 나는 욕망의 소리를 들었다. 하나 둘 씩 옷을 벗기고 기타 등등. 그런데 웬걸 아스트라로브의 몸은 돌이었다.

"당신이 석상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해줬어야지, 그녀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 몸은 원래 이렇지 않아, 온몸이 이러네, 그래, 당신 몸 전체가 돌이야, 그녀가 웃는다, 난 하나도 웃기지 않아. (중략)

그녀가 또 묻는다, 돌하고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냐고, 그럴 것 같긴 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실체를 알게 되다니, 너무해, 나는 그녀의 몸이 다시 살이 되기를 바라며 그녀를 애무했지만, 아스트로라브의 몸은 더욱더 단단해진다."

이 소설을 스티븐 킹 류의 괴기 소설로 오해할까봐 말해 두는데 아스트라로브의 몸이 실제로 돌이었다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은 환각에 빠졌고 그 환각에 의해 살아있는 살갗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신의 계획은 완전히 망했네, 불쌍한 나의 조일."

조일의 결심이 선 것은 그때였다. 조일은 자신의 사랑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항공기 납치를 계획했고 면세점에 들러 테러를 위한 도구를 구매했다. 잠시 후면 비행기는 이륙할 것이다. 조일은 그 비행기를 몰고 미의 상징, 사랑의 총화, 파리를 굽어보는 거대한 에펠탑으로 돌진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좁은 방 안에서 채우지 못한 그녀에 대한 욕망''낮은 고도로 도시 위를 날며' 활활 불타 오를 것이다.
 

 

 


변태같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노통의 소설은 확실히 문장의 촌철에서 힘을 얻는 편이다.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오후 네시. 잘 알려진 그녀의 소설들이 독특한 내러티브로 이름을 얻다 보니 아멜리 노통을 무슨 M.나이트 샤말란 따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여자의 힘은 역시 문장이다.

아멜리 노통이 몇 살 인지 아나? 67년생, 마흔 네 살이다. 믿을 수가 없겠지. 나도 그렇다. 그런데도 그녀는 매년 8월이 되면 소설을 출간한다. 이 여자가 50세나 60세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도 여전할까? 누군가는 '변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 충고하지만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겨울 여행', 대작 이라고 보기엔 한참 멀어 보이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좀 혼란스럽다. 전자의 충고를 믿는 게 좋을까 아니면 후자의 진실을? 나는 후자를 기다려 보지만, 일단 내년 8월 부터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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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ge 2011-02-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다작가 :D 지요 ㅎㅎ ㅎ

한깨짱 2011-02-11 21:27   좋아요 0 | URL
정말 대학시절에는 이 여자에 푹 빠져 있었죠. 두려움과 떨림,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을 읽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