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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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티븐 킹은 3억 부 이상의 책을 팔았다. 빗자루를 타고 나타나 코끼리가 건초를 먹어 치우듯 팔아치운 '해리포터'만 없었다면 스티븐 킹은 말 그대로 '킹'이 됐을 거다. 비록 일등의 자리는 호그와트의 마법사 도련님에게 빼앗겼지만 공포, 스릴러 분야에선 역시 이 남자가 '킹'이다. 피와 시체가 꽃처럼 장식되고 으깨진 두개골이 카펫으로 깔리는 세상에선 이 남자가 먹어준다는 말이다.  

킹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어린 시절 부터였다. 재밌게 본 만화책을 베껴 최초의 소설을 썼다. 엄마가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전말을 알게 되자 다음 부터는 창작 소설을 쓰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킹은 그 후로 꼬박 꼬박 자기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글을 읽었고, 환호했고, 지갑에서 푼돈을 꺼내 킹에게 주었다. 칭찬이 킹을 춤추게 했다.   

 

 

미국의 하류층으로 태어나 홀 어머니 밑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킹은 영리했다. 주립대 영문과에 입학했고 그 곳에서 아내를 만난다. 공부도 했겠지만 건진건 사랑이었다. -  글을 쓰는 사람에게 둘 중에 뭐가 나은지는 나중에 가 봐야 안다. - 졸업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고 세탁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썩은 식탁보와 음식물 쓰레기, 피와 병균이 우글거리는 병원 빨래와 싸웠다. 기진맥진한 몸을 임대용 트레일러 위에 뉘였고 그 안 구석, 작은 세탁실에 쭈구려 앉아 소설을 썼다. 삶의 무게가 감당키 힘들어 교직을 구했다. 

형편은 조금 나아졌지만 시간은 반대였다. 수업을 하고 시험을 보고 집으로 시험지를 들고와 빨간펜으로 이리 저리 채점을 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소설을 쓴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날 땐 TV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서랍 속에는 쓰다 만 원고가 너댓개 있었으나 완성은 무지개 너머 머나먼 정글이다.

글쓰기는 시간이다. 멋진 글을 쓰고 싶으면 일단 엉덩이를 붙이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3억부의 사나이 킹도 그걸 깨달았다. 그는 정해놓은 시간에 적합한 장소에 앉아 - 그게 변기 위가 됐든 한적한 커피숍이 됐든 - 정해진 분량을 쓰고야 마는 인내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야 편집자가 보내오는 '거절 편지'에 친필 메모가 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꿈 꾸는 자가 태어나면 다른 곳에는 비웃는 자가 태어난다. 이것 저것 지어낸 이야기를 신이나 떠들고 있으면 '참 기발한 생각이네'라고 적당히 대꾸한 뒤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어렵게 꺼낸 말 속에서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밝히면 '열심히 해보라'는 말과 함께 '언제 철들래'하는 표정이 기습을 한다.

주변 사람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꼬깃 꼬깃 접어온 종이에 개발새발 그려 놓은 글을 보고 있으면 그 곳에 정말 길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읽기와 쓰기는 정말 더디게 성장한다. 싹이 돋는걸 봐서는 도무지 언제 꽃이 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글쟁이에게는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킹의 아내 태비처럼, 구겨 버린 초고 속에서도 글을 이어갈 희망을 찾아내는 사람말이다.   

"나는 폰드 스트리트의 셋집 현관이나 허먼의 클래트 로드에 있던 임대용 트레일러의 세탁실에서 소설을 썼는데, 만약 아내가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면 나는 용기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태비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놓고 당연시할 수 있는 요소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그녀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격려해 주었다. (중략)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굳이 믿는다고 떠들지 않아도 좋다. 대개는 그냥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p89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소설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사람이다.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꿈은 이어진다.

킹은 이 밖에도 단어를 연마하고, 초고에서 10%를 삭제하고, 대화문을 생생하게 쓰고, 부사를 쓰지 말고, 창작 잡지를 구독하고, 저작권 대리인을 알아보고, 출판 시장을 조사하여 자신에게 어울리는 출판사에 투고할 것을 충고하지만 중요한 얘기는 이미 앞에서 다했다.

사람들은 쓰기 전에 뭔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유명 소설가의 작법서는 언제나 베스트셀러가 된다. 나도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글을 쓰기 전이었고 한 번은 쓰기 시작한 뒤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책은 쓰기 전에 읽는게 아니다. 쓰고 난 뒤에 읽어야 한다. 행동이 나가지 않으면 생각은 구름 위에 노닐뿐 종이 위로 내려와 글이 되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면 머리는 필사적으로 따라온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나는 그걸 깨달았다. 

  
 
   
<출처: Flickr.com, joshjanssen>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나는 안다. 나와 당신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우리의 인생은 좀처럼 여유를 내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내가 특별히 뭔가를 잘못했거나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달려드는 사람일 수록 고통과 좌절, 멸시와 비난의 철벽에 겹겹이 둘러 쌓여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기어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든다.

1973년 스티븐 킹은 연봉 6,400달러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 그 해 장편 '캐리'를 2,500달러의 선인세로 계약했다. 몇달 뒤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40만 달러에 팔리자 킹은 할 말을 잃었고 태비는 낡아빠진 트레일러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캐리의 성공엔 분명 운이 따랐다. 그러나 그 운은 캐리 이전에 소멸한 수 많은 원고를 밟고 왔다. 그걸 모른다면, 우리는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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