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회사 생활 해보니 어떠냐?'는 것이었다. 대답은 대개 '잘 모르겠다'거나 '그냥 그렇다'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이런 대답을 하면서 어쩜 이렇게 감상이 없을까 하다가도 이 질문을 고대로 선배에게 돌려준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궁금했다.
아마 특별한 얘기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상'이라는게 원래 그런거다. 다람쥐 쳇바퀴 돌기. 사람의 뇌는 가장 많이 한 일을 기억하는게 아니라 가장 특별한 일을 기억한다고 한다. 당시이나 나나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처지에 뭔가 특별한 얘기가 있을리 없지 않은가. 이런 질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평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대개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요즘 신입 사원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회사 생활 어떠냐?'는 것이다. 말하면서도 참 난감하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나. 돌아오는 대답도 1년 전의 나와 마찬가지로 뾰족하지 않다. 어쩌면 이 말은 신입 사원과 독대하는데서 오는 침묵, 그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된 선배들의 필살기가 아닐까 한다.
<판화가 Maurits Cornelis Escher 作>
만약 그렇다면 이 기술은 Freshmen에서 Sophomore로 레벨업하는 순간 패시브 스킬로 습득되는 능력일 것이다.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지난 1년간 수 많은 선배들로 부터 들어온 질문이 최면이 되어 Freshmen을 만나는 순간 저절로 발동하는 능력. 이런 구태의연한 대물림을 고급스럽게 '전통'이라고 부르는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난감한 일은 하나 더 있다. 후배들의 입에서 대답하기 곤란한 얘기가 튀어 나왔을 때다. 예를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생각만큼 창의적이지 않다'거나 '우리의 작업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얘기들 말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땐 선배로서 뭔가 납득이 갈만한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결국 한다는 얘기는 '조직은 원래 다 그런거다'고 얼버무리는 것 뿐이다. 물론 조금 잰체 하는 사람의 경우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운을 뗀 뒤 '정말로 모르겠는' 얘기를 주구장창 늘어놓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너도 내 나이 되봐' 또는 '당신도 내 위치 되보면'하는 가히 얼토당토 않는 결론을 내려 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선배라고 언제나 답을 갖고 사는건 아니다.
<clean shave face. 1moretime 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사고 구조를(이하 Frame) 갖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Frame과 적응해야할 환경의(조직) Frame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에서 예를 든 신입사원들의 의문들은 이 두개의 Frame이 강렬히 충돌했을 때 터져나오는 것이다. 의문이 많이 생길 수록 Frame은 아직 굳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의문'이란걸 품어본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면당신은 이미 '닳은' 사람이다. 당신의 Frame은 이미 온순해졌고 말랑말랑해졌지만 Freshmen에게서 보이는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이 가진 말랑함은 탄력이 아니라 흐물함이다.
어리석은 후배들을 깨우쳐 준답시고 근사하게 연설해 보지만 이미 나는 조직의 논리에 포섭당한 좀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매너리즘과 순응을 '경험'과 '지식'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고 있는 걸지도.
선배란 그저 뒷 사람보다 조금 먼저 답을 구하러 나섰을 뿐이지 이미 모든 해답을 구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선배들도 틀릴 수 있다. 나는 아직 한 개의 답도 찾지 못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선배는 되야 겠다'고 생각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