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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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들이 '예수'에 집중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 예수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유산계급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인물이 존재했던가? 이 질문의 답을 잠시 미뤄둔다 하더라도 이토록 상쾌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관심가져 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솔직함이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히 다가오는 오늘날에 말이다.  

김규항은 우리 사회의 혁명 실패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영성의 개발이 없는 혁명이다. 그리고 둘째는 영성의 개발에만 몰두하는 혁명이다. 전자는 냄비에 끓이는 밥과 같다. 밑바닥은 다 타서 늘러 붙는대도 윗 부분은 설익어 먹을 수 없다. 반면 후자는 증기를 내뿜지 않는 압력 밥솥이다. 안으로 꽁꽁 싸매고 들어가 아무리 힘을 줘도 뚜껑은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해답은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땐 그냥 '중간'에 두고 에둘러 말해 버리면 의외로 위대한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공자도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으며 칸트 또한마찬가지였다. 김규항이도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사회 변혁과 내 안의 변혁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때 탄생한다'. 고로 좌파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김규항이 이번에 '예수'라는 담론을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올리기로 한 것은 그 자신에게는 혁명의 초석이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예수전'은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쫓는다. 김규항에 따르면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견해'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복음서로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였고 종교적 첨가가 가장 적은 복음서이다. 

김규항이 마르코 복음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굳이 좌파 기독교도라는 말을 만들어야 할만큼 보수화해버린 오늘날의 교회와 말씀은 김규항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 예수', 진보의 탈을 쓰고 인민을 호도한 짭퉁 지도자들에(바리새인) 대항하고 성전 앞 상인들의 좌판을 뒤 엎으며 분노했고 언제나 빈자와 약자를 대변했던 이 위대한 '아웃사이더'를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예수전'을 통해 김규항이 말하고자하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정말 무식하고 편협하다고 생각한다(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슬람교 심지어 가톨릭까지 싸잡아 사이비 종교쯤으로 말하는걸 보고 있으면 그 무식에 정신이 아연해지기까지 한다.이것은 한국의 종교 교육이 몰이해와 배타성으로 점철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에게 왜 몰이해와 배타성이 필요한 것인가? 그건 이미 거대한 주식회사로 변해버린 한국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모토는 단 하나. 

남보다 더 많이 고객을(신도) 유치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남의 종교, 심지어 다른 교파 마저도 찢어 발겨야 한다. 몰이해와 배타성은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신도가 돈으로 보이는 교회에서 어떻게 빈자와 약자를 대변했던 예수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예수가 재림하여 부와 권력에 맛들인 목사들을 향해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놓고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누가 과연 예수를 따를 것인가? 그들은 또 한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당신이 꼬박꼬박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헌납하며 좋은 배우자와 직장, 높은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한 기도를 올리기 전에 진짜 예수의 말씀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자. 그리하여 내 안의 진정한 변혁부터 이뤄내자. 그럼 총력전도주일에 가짜 신도의 이름을 적어내지 않아도, 전철역 앞에서 싸구려 커피믹스를 타주지 않아도 복음은 제발로 땅끝까지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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