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 무협 만화의 계보는 열혈강호의 독보적 행진과 용비불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열혈강호는 설명이 필요없는 만화다. 1994년 부터 지금까지 무려 50권이 넘는 단행본을 발행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만화가 아직도 연재 중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한 인기를 누린 만화는 근 십년, 아니 한국 만화계를 통털어 봐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돈은 참 많이 벌었을 만화 열혈강호>  

열혈강호의 성공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므흣한 여자 캐릭터들이 제공하는 은밀한 성적 판타지는 당시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있는 남아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열혈강호가 지금에 와서 그렇게 특별한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열혈강호가 재미 없어진 이유는 작품의 수준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그것을 보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강한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 했다. 오늘날 열혈강호가 온갖 비난을 받더라도 세월이라는 무심한 고수에 대항해 오랫동안 버텨온 생명력 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것이다.

문정후의 '용비불패'는 웰메이드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이 만화는 그림, 스토리, 캐릭터 어디 하나 빠지는게 없다. 특히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사용하는 적절한 유머는 이 작품을 좋은 작품에서 위대한 작품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용비는 결코 지지 않는다>

용비불패는 열혈강호가 이미 자리를 잡은 1998년에 혜성같이 등장해 23권의 단행본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앞으로 10년 안에 용비불패와 견줄만한 만화를 만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자신들의 영상 미학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들 밖에 없다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남매의 말처럼 용비불패를 능가할 만화는 다시금 문정후의 손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제발 괴협전이나 용비불패 외전좀 연재해 달라고!

한국 무협 만화의 전통은 용비불패 이후로 사실상 끊겼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특히 개방과 소림사가 등장하고 강호를 유유히 방랑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정통 무협은 이제 정말 황성, 사마달류의 만화가 아닌 이상 찾아 보기 힘든 소재가 되버렸다.  

대신 판타지와 SF와 결합된 '칼 싸움'이 무협 만화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 정점은 윤인환, 양경일의 '신 암행어사'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양경일은 오래전 소마신화전기라는 잊지 못할 만화를 통해 이미 판타지 칼 싸움을 보여준 바 있다. 그 밖에도 '천추'라던가 '단구'라는 강신술사 칼잡이들이 나오는 만화가 있었다. 이 만화들은 역사와 판타지가 적절히 혼합되 꽤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아무래도 '무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무협'이란 칼, 강호, 문파 삼요소로 이뤄져 있는 황당무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힘과 권력에의 의지를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남성들의 판타지가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비록 배경은 달라도 무협의 '구조'를 따르는 이야기는 강호와 칼 없이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강호라는 무대가 도시의 뒷골목으로 대체되면 조직폭력배 만화가 등장하고 이것이 학교로 바뀌면 학원 폭력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무대에서 절대무적의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이 사람을 만화가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이견이 있지만 적어도 한국 만화계에서 이 만큼 성공한 사람도 드물다. 혹자는 그의 이름을 프로 또는 화백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엄연히 이름 석자를 가진 유명 만화가다. 나는 그의 이름을 '김성모'로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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