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Veritas 10 - 완결
윤준식 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만화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간만에 볼만한 무협 만화가 나왔구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Oh! Great(오구레 이토)씨의 일본만화 '천상천하의 카피 버전이네'라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 만화는 '천상천하'에 빚진 것이 많아 보인다. 우선 둘다 학원물이라는 점. 게다가 갈등의 주체가 {(학생회vs비학생회) vs (어른들로 구성된 외부세계)}라는 점 등 세세히 따지고 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베리타스'가 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만화는 꽤 훌륭했다. 특히 그림이 좋았고 '천상천하'처럼 웬지 재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가 없어서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겨우 열 권에서 끝이란다. 아무래도 10권이 늦는다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였다. 한 달에 2페이지라도 계속 연재해 주면 안될까?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도 5년에 한권 씩 나오는데. 원래 대작이란 독자의 간절한 기다림을 도도히 외면하며 유유히 살아가는거 아닌가.

아직 10권을 보지는 못했지만 안 봐도 뻔하다. 9권의 내용으로 볼 때 한 권으로는 도저히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10권이 한 1,000페이지 쯤 되면 어느 정도 수습은 가능하겠지만
보아하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설마 '협객 붉은매'처럼 2부를 염두에 둔건 아닐테지. (다행히 300 쪽이 넘는 분량이기는 하다)

이 만화의 강점은 한국 전통 문화를 재구성하는 독특한 해석이었다. 예를 들면 남사당 패의 꼭두쇠, 곰뱅이쇠 등이 가진 버나, 살판 등의 기술이 사실은 무술에서 시작한 것으로 백성들이 무기를
소지하거나 무술을 익히는 것을 금했던 지배층의 억압을 피해 교묘히 '놀이'로 탈바꿈 했다는 식이다. 그래서 접신을 시도하여 액땜을 막거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살풀이는 '강신술사'로 남사당 패의 후예는 각자의 기예에 맞는 전통 무예로 되살아 난다.

물론 주류 무공은 이런 전통 무예 보다는 여주인공 '베라'를 중심으로 한 '리 유니온'계 무공이다.  

   

<베라>

'리 유니온'이란 인공 '기(氣)'를 합성하는데 성공한 거대 기업의 무술 연구소다. 이 연구소가 설립한 학교에는 세계 각지에서 뽑혀온 무술 인재들이 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무술 인재란 무술을 익힐 재능을 갖춘 자와 이미 전통 무예를 전수 받은 전승자까지 포함된다.  

'일인전승 비인부전'의 금기를 수 천년 동안 지켜왔지만 인공 기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진 전통 무예 전승자들은 무공의 비전을 리 유니온에 공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된 전통 무예는 리 유니온의 손에서 혼합되고 보완되어 '리 유니온계'라는 다양한 무공을 탄생시킨다. 물론 이 무공은 리 유니온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얼핏 봐도 전통 무예 전승자와 리 유니온계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예상되지 않는가? 예상대로 이 만화의 축은 전통과 현대의 대결이자 지식의 독점과 공개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의 특성상 이런 쟁점이 진지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이야 다양하겠지만 역시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주인공 마강룡과 아이들이 '베라'의 학생회와 격돌하는 장면이다. 특히 '신암행어사', '아일랜드'의 양경일, '니나 잘해'의 조운학의 문하생을 포함하여 도합 7년을 수련했다는 김동훈의 작화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마강룡> 

삼국지, 수호지를 읽으며 등장인물을 줄줄이 외우고 장비가 무슨 무기를 썼는지 노지심이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베리타스'는 현대판 삼국지이자 수호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성있는 캐릭터를 즐기는 사람에게 다양한 인물과 기술의 등장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베리타스와 삼국지와 수호지는 그런 면에서 쌍둥이다.

만약 작가에게 건강과 시간 그리고 여유가 좀 더 주어졌더라면 '베리타스'는 한국 무협 만화의 고전이 됐을 수도 있다. 겨우 10권으로 마무리된 이 만화에 깊은 애착과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이제 무슨 만화를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걸까. 이제 우리 나라의 무협 만화라면 이미 백만년 전에 성장을 멈춰버린 열혈강호 말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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