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지중해 시대의 해전은 오늘날 내가 상상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었다. 나는 해전이라고 하면, 적어도 2, 3층 정도 되는 높이에 길이가 200-300미터는 되는 방주급 기함 수십척과 강력한 대포로 무장한 쾌속선 수백대가 초정밀 사격을 가하는 규모와 과학이 어우러진 화려한 경연장 정도로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레판토 해전에 쓰인 배들을 살펴보면 수송용 대형 범선과 함포 사격을 담당했던 갈레아차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역시 주류는 갤리선이었다.  




갤리선은 사람이 직접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다. -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 보통 노 1개에 3명의 노잡이가 달라 붙었고 노의 갯수는 배의 규모에 따라 각각 달랐다. 그러나 이 배가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대양에서의 항해에는 약점이 있을지 몰라도 기동/조종에 관한한 당시 바다에서 갤리선을 따라올 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갤리선을 이용한 해전은 대충 이런 양상을 보였다.

양쪽 진영의 함대가 서로 마주보고 선다. 전쟁 시작을 알리는 함포 소리와 함께 양 진영의 선박들이 돌진한다. 서로가 가까워졌다고 느낄때쯤 양쪽의 군사들은 서로를 포위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지만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해선 적 선박을 포위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곳은 뻥 뚫린 바다. 아차 하는 순간에도 곧바로 방향을 틀어 도주해 버리면 쉽게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 선박의 기동력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이 갤리선 전투의 핵심이었다. 레판토 해전에서 바르바리고가 이집트 총독 시로코를 무찔렀던 방법도 바로 이것으로 당시 바르바리고는 시로코의 함대를 갯벌 쪽으로 몰아 적 함대를 사실상 고립시킬 수 있었다.

기동력을 잃은 적선에 아군의 배가 충돌하여 엉키고 나면 더 이상 바다는 없다. 멈춰버린 한 무더기의 배들은 거대한 육지가 되는 것이다. 그럼 양쪽의 군사들이 서로 칼을 들고 나와 피비린내 나는 백병전을 벌인다. 당시의 해전이 '바다 위에서 벌이는 육전'으로 불렸던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육, 해, 공을 막론하고 새로운 무기의 출현은 언제나 전쟁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최대의 공을 세운 대포가 함대의 주요한 공격 무기로 자리잡게 되자 기나긴 세월 동안 영광을 누리던 갤리선의 지위는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뒤의 이야기는 앞선 리뷰에서도 말한바 있듯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완파당하면서 마무리 지어진다. 이런 양상은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조선에서도 발견되는데 그것은 이순신이 활약한 임진왜란에서였다.  

압도적인 전투병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백병전을 주로 하는 일본의 해군이 '아직 12척의 배를 갖고 있던' 이순신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의 판옥선에 영국 해군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대포와 그를 활용한 절묘한 전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르고 흘러 당시의 대포는 이제 고성능 미사일과 항공모함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미사일과 항공모함을 무력화 시킨 것이 마치 백병전을 연상케하는 카미카제 특공대였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카미카제 특공대에 충격을 받은 미군은 그 때 이후로 상당한 연구를 거듭, 급기야 현대 해양 강국의 기준이 된다는 무적의 방패 이지스함을 등장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카미카제가 항공모함을 무너뜨린것 처럼 이지스함 또한 되풀이 되는 역사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이지스함은 무적이라고? 역사의 진보를 믿는 당신의 마음에 상처주고 싶진 않지만, 카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테러에 무너지기 전까지 항공모함이 불리던 이름이 바로 그 '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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