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리는 세계 -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
프랜씨스 무어 라페 외 지음, 허남혁 옮김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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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리뷰 'MB노믹스를 까고 싶다면 이 책을 봐라 -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편에서 나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요점과 그것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지배하는 수법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굶주리는 세계'는 그 중에서도 농업과 관계맺는 점들을 살펴 그 폐해를 밝히는 책으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이 실제로 겪는 신체적, 경제적 착취를 설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시적 관점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실제 피해 사례와 고통의 규모를 파악하는데는 '굶주리는 세계'를 읽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농업국들의 피해는 참혹하다. 정확히 말하면 농업국의 피해가 아니라 농업국에 살고 있는 농민들의 피해다. 문제의 요점을 살펴보자.  

신자유주의는 농업국을 농업국으로, 공업국을 공업국으로 영원히 유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농업국이 농업 수출국이 되기위해선 팔리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이것을 환금 작물이라 부른다. 한편 이 환금 작물은 주로 대규모로 재배된다. 어떤 산업이든 규모의 경제를 유지해야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사업은 일반 농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 대지주나 대기업, 즉 소수의 부자들만이 가능한 사업이다. 바로 여기서 농민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시대에는 자영농이나 혹은 소작농들이 식량으로 쓸 수 있는 곡물들을 재배하며 그나마 먹고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서고 대기업과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게 되면 땅은 더이상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주던 삶의 터전이 아니다. 기업의 관심은 오로지 단위 면적당 이익이다. 
그들에겐 팔리지 않는 곡물을 심어 땅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온 국토의 논과 밭은 환금 작물로 도배된다. 이 과정에서 땅을 잃거나 더이상 농사로 삶을 유지하기 힘든 농민들은 전부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대기업들의 농장에서 하루 종일 착취 당한다.  

그러나 그들이 얻는 노동의 대가는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자녀들의 교육 문화 비용을 감당하기는 커녕 천정 부지로 오른 곡물 값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조차 힘들다. 농토가 환금 작물로 도배되는 바람에 주식이 되는 곡물들이 씨가 마른 탓이다. 수입 곡물을 사먹으면 된다는 말은 빵대신 고기를 먹자는 마리 앙투와네트의 말만큼 무심하다.

재앙이 여기서 그친다면 행복한 일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많은 양의 비료와 농약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농업국들에게 비료와 농약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선진국의 화학 기업들이다. 개발도상국의 농장은 선진국의 화학 기업들에게 값싸며 문제를 만들지 않는 실험장이다. 온갖 독극물로 제조된 농약들은 개도국으로 운반되고 이것들은 변변한 보호장구도 없이 사람에 의해 뿌려진다. 막대한 화학 물질에 맨 몸이 노출 되는 것은 물론 일용직 노동자가 된 농민들이다.  

이제 굶주리는 세계는 농민들의 피로 범람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피를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지옥의 대마왕이다.

'굶주리는 세계'는 이 땅에 한 끼 밥 조차 챙겨 먹지 못하는 빈자들이 넘치는 이유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그곳엔 무의미한 외침과 선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정확한 통계와 구체적 수치가 존재한다. 그 수치 속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굶주림이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그 해결 또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는다면 조만간 농약 앞에 서게 될 사람은 제 3세계의 농민들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될 것이다. 부자들의 톱니바퀴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밟아 없앨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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