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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는 것을 정말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이를테면 당신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MB에 대한 분노가 순수하게 당신의 마음 속에서부터 발현된 감정이냔 말이다. 그저 옆에서 나쁜 놈이라고 떠드니까 덩달아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장담할 수 있겠지 그는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니까.
질문이 어리석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것은 미술인가? 백이면 백 미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시 동안의 침묵. 르네상스라는 단어라도 떠 올린다면 다행이다.
그러고 나선 더듬더듬 '천재로 불린 화가의 작품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실 나도 어릴 때는 모나리자가 예쁜걸 몰랐는데 사람들이 최고의 미소라고 하니까 어쩐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그 유명한 비평가들보다 잘났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 하는 감탄이 들기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이제 편히 쉬자.
그런데 당신이 '모나리자'를 미술로 판단하는 근거는 결코 미학적 관점에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장인 정신,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어느 화가의 천재적 '기술'에 대한 경의에 가깝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슈퍼 컴퓨터가 묘사 대상을 초정밀 스캔하여 Photoshop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초고해상도 프린터로 출력한다면 그것을 미술로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슈퍼 컴퓨터의 작품을 미술로 부르지 않겠다면 동시에 '모나리자'도 미술로 취급해선 안된다. 당신이 제시한 모나리자의 예술성도 단순히 묘사 기술의 우수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문제인가? 좋다. 백번 양보해서 모나리자를 미술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술에 대한 당신의 감상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 대한 감상은 당신이 '모나리자'라는 미술 작품을 직접보고 그것과의 교감을 통해 이뤄낸 감성적 체험이 아니다.
설령 당신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봤다 하더라도 그 작품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만약 당신이 가짜 작품을 보고 이런 체험을 얻었다면 과연 진품과 짭퉁,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한 가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상에 따라 정해지고 루브르의 가짜 모나리자를 본 당신의 감상을 진짜라고 인정한다면 내 책상 앞에 붙여둔 컬러프린트판 '모나리자'와 진품 '모나리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올레! 우리도 지금 당장 부자가 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모두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물은 주문자의 집이나 성당에 걸리는 인테리어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장인의 공예'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술관과 미술 비평 그리고 경매장으로 요약되는 근대 문화의 발명품들이 그것을 미술로 만든 것이다.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해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것은 미술인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가 이 책이 주장하는 주요 내용이다. 책의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 이집트의 피라미드,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인도의 시바상 이 모든 것들이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Matrix를 파괴하는 Neo와 같은 책이다. 오랜 시간동안 켜켜이 쌓인 미술에 개념, 그 고착된 체제를 뚫고 보여주는 싱싱한 관점은 미술과 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새 지평을 열어 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정되는 사물의 가치에 대한 통찰은 이 책을 한 권의 미술서를 뛰어넘어 위대한 철학서로서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대한 점은 이 책이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씌여졌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이렇게 쉽게 씌여졌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훌륭해 질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와 그리고 번역가는 정말 기막힌 작업을 해냈다. 판타스틱한 경험이나 볼거리를 제공했을 때 현대 사회의 속어는 그것을 '예술이다'라고 표현하던가? 그럼 다음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은 예술인가?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