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이라고 하면 100분 토론에 나오는 말 많고 신경 거슬리는 사람쯤으로 알겠지만 사실 그의 직업은 미학자다.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미학'을 강의하는 곳이 서울대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중권이 다니던 당시에는 그랬다. 서울대에서 미학을 공부, 동대학원 석사 그리고 미학을 위해 독일에서 10년간 유학. 전공은 발터벤야민. 그러니 진중권은 한국에 몇 안되는 진짜 미학 전공자인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을 썼다. 못 들어본 사람이 많거나 제목은 들어봤으나 안 읽어본 사람이 많거나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일텐데 이 책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팔려 진중권에게 '자가용 비행기'를 안겨준 유명한 책이다. 현재까지 1, 2, 3권이 나와 있고 앞으로 더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4, 5, 6권이 나온다면 나로서는 더 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2년째 보관함에만 담겨져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테지.
미학이라는 건 철학의 한 분야다. 고대 철학들은 선악의 기준과 미추의 기준이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미학=철학 이었고 미학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와 동일했다. 그래서 세상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모두들 미학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미학이라는 말에서 난해함과 함께 딱딱한 건조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들 덕분 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미학은 바움가르텐이라는 새 아버지를 맞이하게 된다. 바움가르텐은 미학을 논리와 이성으로 논증해야만 하는 철학의 금고에서 꺼내 감성의 영역으로 되돌려 주었다. 이제 미추는 감성과 직관에 의해 누구나 논할 수 있는 친숙한 개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학은 오해에 둘러 싸여 있다. 지난 5년간 정말 줄기차게 미학 오디세이를 권했지만 지인 중 그 누구도 쉽사리 이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심지어 몇 권씩이나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 그 책들이 잘 살아 있는지 시원한 봄 햇살은 커녕 형광등 불 빛이나마 본 적 있는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지식을 대중화하는데는 우리 나라에서 진중권만한 사람이 없다. 이건 사실이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이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지만 내가 볼 때 진짜 지식 소매상은 진중권이다. 정치적 내공은 딸릴 수 있으나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엉킨 실타래 처럼 복잡한 이야기를 술술 푸는 재주는 저 '항소이유서'의 유시민도 진중권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진짜 강추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움베르토 에코의 두꺼운 미학서들을 생각하면 안된다. 그네들의 책이 무시무시한 학술서라면 미학 오디세이는 영화 잡지 씨네21쯤 되는 책이니까.
*미학 오디세이 1, 2, 3권은 고대에서 근대에까지 이르는 미학의 발전사를 개괄하고 있다.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오히려 흥미진진 신나는 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사람도 역시나 쓰기 보단 말하기에 능한 사람 같은데 읽기 쉬운 글은 결코 사상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달변의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