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말기, 용맹과 지혜를 두루 갖춘 장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창을 꼬나들고 말에 올라 적진을 향해 돌진하면 용감무쌍, 감히 막아서는 자가 없었고 아비규환 전마의 소용돌이 속에선 그의 임기응변을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한편 일상 속에는 청렴과 결백, 절제와 겸손이 바다를 이뤘습니다. 공을 이룬 뒤에는 절대 뽐내지 않았고 다른 장군들을 시샘해 알력 다툼을 벌이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천수까지 누리며 척박한 촉한의 인재풀을 오래오래 채웠던 사나이. 이름은 조 운. 자는 자룡. 사람들은 그의 고향을 앞에 붙여 '상산 조자룡'이라 불렀습니다.

조자룡은 흔히 아는 것처럼 '오호 장군'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오호 장군'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시 촉나라는 네 명의 최고위급 장군을 두고 있었는데 순서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순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호 장군'이었던 셈입니다. 장판에서 목숨을 걸고 태자를 지킨 상산 조자룡이었으나 익주 정벌에서 뒤 늦게 얻은 황충 보다도 낮은 자리에 있었던 것 입니다. 

물론 소설은 달랐습니다. 조자룡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대부분, 그리고 민간에서 '오호 장군'을 만들어 낸 것도 전부 '삼국지연의' 탓입니다. 소설 속에서 조자룡이 보여준 활약은 오호 장군이 아니라 오호 장군 할아버지가 와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중 클라이막스는 단연 장판 싸움에서 태자 아두를 구한 일입니다.

당시 유비는 신야라는 조그만 성을 근거로하는 궁색한 군주였습니다. 그나마도 버리고 도망가야 했는데 조조의 대군이 그를 죽이기 위해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었지만 유비는 여지없이 꼰대 기질을 드러냅니다.  

신야성의 백성들을 데리고 가야 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유비군의 꽁무니에는 줄줄이 사탕, 비엔나 소세지 처럼 수 많은 백성들이 꼬리를 잇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장판에서 조조의 대군을 맞닥 뜨린 것은 당연한 결과 였습니다.

조조군을 보자, 유비는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어지간히 밑에 사람을 괴롭히는 인물입니다. 이 때 조운은 버려진 태자 아두를 품에 안고 감부인을 호위하여 조조의 백만 대군을 헤집기 시작합니다.  

필마단기. 용과 범의 기세가 불을 뿜었습니다. 창 질 한 번에 수십명의 적군이 쓰러졌습니다. 너무 많은 적군을 죽여 창날이 무뎌지자 때마침 나타난 하후은을 일격에 베어버리고 조조의 보검 청강검을 탈취 했습니다. 조조군은 졸지에 자기 주인의 칼에 맞아 죽는 억울한 귀신이 됐습니다. 가까스로 조자룡이 장판교에 도착하자 그 유명한 장비의 장판교 싸움이 시작 됩니다. 그래서 조자룡은 무사히 아두를 안고 유비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유비는 태자를 받아들자 냅다 땅에 던져 버립니다. 그러더니 '어찌 자식 따위가 내 귀하고 용맹한 장수 하나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하며 목숨을 걸었던 조자룡을 위해 펑펑 눈물을 흘립니다.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역시 정치인은 정치인. 유비의 터프가이 쇼에 감복한 조자룡은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다짐합니다.

자룡이 아두를 구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훗날 손부인이 태자를 납치하여 오나라로 돌아갈 때 감히 추격해 왕후의 앞을 가로 막은 것도 자룡 이었습니다. 그 어린 태자의 은덕 이었는지 자룡은 선대와 후대 황제를 두루 섬긴 촉한 최후의 오호장군이 됩니다.

조자룡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군웅할거, 모략과 음모, 배신이 판을 치는 혼란기에 묵묵히 한 사람을 섬긴 충직함. 하지만 조자룡이 신화화 되는 것은 절제와 겸손, 청렴과 결백 등 오늘날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반동적 욕망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 토록 순결한 일은 조자룡같은 영웅이나 할 수 있지. 우리같은 사람들이 무슨수로 따라갈 수 있겠나. 이래저래 때를 묻히고 사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라네. 허허허' 이렇게 너털 웃음을 웃고 나면 온갖 악행은 정당화 되고 맙니다.  

그래서 깨끗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사회는 그닥 바람직한 사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계가 얼마나 타락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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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 2011-08-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게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11-08-28 20:03   좋아요 0 | URL
아니 이런 엉망글을 잘 봐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잘할게요.

Good 2012-01-1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12-01-17 18:36   좋아요 0 | URL
정말 잘 보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