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
나가오카 겐메이 지음, 이정환 옮김 / 안그라픽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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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관련 책은 제목부터 간지가 나야한다'라는 것이 안그라픽스, 소위 한국 디자인 시리즈의 대부인 이 출판사의 철학인 듯 하다.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라는 제목도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의미가 '보통 사람의 생각위를 넘어 다니는 디자이너의 사유법'을 말하는 것인지 '복잡해져버린 세상사, 그 생각의 쓰레기장을 유유자적, 유아독존 거칠 것 없이 홀로 치닫는 디자이너의 오만과 자신'을 뜻하는 것인지, 아무튼 알쏭달쏭 그러나 그 '간지'만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제목으로 낙점된 것이 아닐까. 거기다 책 용지를 보면 재생용지인 갱지. 나가오카 겐메이가 재생 가구, 잡화 사업과 연관이 있음을 감안할 때 오히려 그 '싼 맛'이 자연스런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니 이로써 '간지의 완성'을 이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나가오카 겐메이가 D&Department라는 디자인 잡화점을 운영하는 동안 써내려간 일기다.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 하던 여자 아이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던 흥분과 스릴. 옆 자리 친구의 일기를 훔쳐봐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나가오카 겐메이라니 디자인계의 스타라 부를 수 있는 이 사람의 일기라면 분명 짜릿한 사건들로 가득차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 챕터를 다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종종 집중력을 잃고 내용을 놓치게 되는 이유도 이것이 일기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개요를 짜놓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때로는 너무 짧아 아쉬운, 아니면 주저리주저리 반복되는 혼잣말을 듣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이 책의 매력이다. 아직 가공되지 않은 채 뜨끈뜨끈, 고조된 감정이 토해놓은 순도 높은 생각의 덩어리. 이 책에서는 그런 살아있는 생각의 펄떡임을 느낄 수가 있다.

짧은 이야기는 기록을 해두고 싶을 만큼 강렬한 충격이었다는 것이요 반복되는 이야기는 그만큼 자주 겪는 일이라는 것일테니 어쩌면 이것들이 그 세계를 살아가는, 나아가 우리네 인생을 설명하는 힌트가 아닐까? 디자인 관련자가 아니어도 쉽게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는데는 아마도 나가오카 겐메이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이 겪는 보편적 감상이 디자인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두께는 상당하지만 대부분이 여백과 제목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는 이 봄 한가하게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다 졸기도 하는, 그런 여유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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