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글을 못썼다.  지난 몇 주 동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 리뷰를 작성해 왔고 드디어 오늘 리뷰를 등록할 수 있었지만 몇 번을 읽어 보아도 역시, 창피한 글이다.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먼 훗날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며 이럴 때가 있었지 하며 얼굴을 붉힐 수 있는 날을 꿈꾸며 과감히 버튼을 눌렀다.   
    

  내가 리뷰를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남과 똑같은 리뷰를 쓰고 싶지는 않다는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책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고 상투적이지만 자못 진지해 쉽게 업수이 여길 수 없는 주제들을 현실의 문제와 버무려 내놓는 인스턴트 리뷰. 나는 이런 것들을 거부 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리뷰를 쓰는 내내 나만의 '스타일'을 정립 해야만 했다. 

  나는 독서를 머리 속에 씨앗을 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씨앗은 부모의 나무로부터 온 것이지만 결코 부모와 같지는 않다. 리뷰 또한 내가 읽은 책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단순히 그 책을 참조하는 하위의 개념으로 쓰여져서는 안된다. 내 글은 원본과 대등한 위치 서 있어야 하며 상호 참조할 수 있되 그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씨앗에 움을 틔우고 나무로 길러내는 작업과 같다. 그리고 정성껏 길러낸 나무들이 넓고 푸른 '사상의 숲'을 이룬다면 이로써 내 글은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앞서 말한 '인스턴트 리뷰'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 못한 것 같다. 그것들은 책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니까. 내가 쓰는 리뷰라는 것은 그저 내 생각을 정리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오히려 리뷰라는 단어를 오해한 것은 나의 오만과 비뚤어진 심성이 아닐까? 

  어찌됐든 저찌됐든 다음 리뷰는 김규항의 '예수전'에 대한 글이 될 것 같다. 이 글이 또 얼마나 오래 쓰여질지 알 수 없다. 쓰기가 읽기만큼 쉬웠다면 참 좋았을텐데, 역시 보는 것과 참여하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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