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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혹 1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그 당시엔 성(性)이 없었나 보다. 나자렛에서 태어났기에 그저 '나자렛 예수'라 불렀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사실이 숨어 있다.
첫째, 예수가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의 말구유가 아니라 나자렛의 목수 요한의 집이라는 사실.
둘째, 예수는 결코 날 때부터 '그리스도'는 아니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줬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보다는 그가 앉은뱅이를 춤추게하고 장님을 눈뜨게 했으며 다섯 조각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의 장정을 먹인 기적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적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언자를, 유대의 왕을 그리고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신이 된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고뇌와 고통이 감추어진 십자가를 메고 예수는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죽기위해 태어났고 너희는 보기위해 살아왔노라' 바야흐로 예수의 십자가가 언덕 꼭대기에 곧추서고 그의 손발에 못을 박는 망치 소리가 클라이막스를 알린다. 예수는 다음 씬을 지루하게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하나님의 '액션' 소리가 떨어지자 최후의 힘을 짜내 마지막 대사를 시작한다. '앨리 앨리 라마 사박타니' 사람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남길 명대사를 내뱉고 예수는 드디어 눈을 감는다.
'캇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바로 여기에서 중지를 외친다. 예수가 신으로서 십자가에 매달렸다면 그것은 세계를 향한 쇼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는 한 명의 배우. 주어진 역할에 로봇처럼 임하는 꼭두각시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예수는 시뻘건 피를 흘렸다. 내 몸에서 흐르는 것과 똑같은 색깔의 피. 그리고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는 한 명의 인간으로, 너무나 나약하고 외로운 사람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리하여 이런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길고 긴 골고다 언덕을 나 홀로 걸어가는 구나. 나를 메시아라 부르던 이들은 어디 갔느냐. 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질 사람이 한 명도 없구나. 베드로야, 그래 이 간사한 녀석아. 수제자로 불리던 너는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내 가슴에 못질을 했지. 힘세고 듬직한 야고보 너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 사이로 그 큰 몸을 숨기는 구나. 요한 나의 순종하는 어린 양 요한아. 너는 어두운 뒷골목에 머리를 쳐박고 눈물이나 질질 흘리는 것으로 선택받은 사도의 책임을 다하는구나. 아아, 막달라의 여인이여. 나는 왜 당신과 함께 인간의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가. 하느님의 축복아래. 수 많은 아들 딸들을 낳아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이 때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당신이 유대의 왕 그리스도라면 당신 자신이나 구원해 보시지!'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리고 그 말은 이런 뜻이었다. '아 인간적으로, 너무나 고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