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호르몬 - 나를 움직이는 신경전달물질의 진실
데이비드 JP 필립스 지음, 권예리 옮김 / 윌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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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의 작동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인간을 전자 기계로 환원하고 싶은 강한 욕망에 빠져든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각은 결국 전기 신호로 변해 뇌로 전달되고 그 해석의 결과가 감정이라는 잔재로 남는다. 만약 우리가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면 전기 신호가 발생되고 그 신호의 강도에 따라 비명 소리를 조절하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럼 이 기계의 비명을 우리는 고통이라고 불러야 할까? 강한 전기 신호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회로를 막고 있던 고무 패킹이 끊어지고 새롭게 열린 그 길을 통해 전달된 전기 신호를 CPU가 우울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이 기계에게 감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경이롭고 고유한 척해봐야 인간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신경전달물질은 진짜 재미있다. 알아갈수록 내 몸을 해킹하는 기분도 들고, 정신의 힘으로 호르몬을 조절해 감정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이번 기회에 아주 유명한 호르몬 6개의 작용 원리를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아주 흔해진 도파민부터 트렌디한 테스토스테론, 그 옛날 황수관 박사님이 활약하던 때의 엔도르핀, 스트레스로 가득한 내 몸에 장기 투숙 중인 코르티솔, 우울증의 원인 세로토닌, 후성유전의 주요 사례로 언급되는 옥시토신까지.


하지만 <인생은 호르몬>은 화학책이 아니다. 호르몬의 동작 방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사실상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테스토스테론을 뿜어 올리는 법을 설명하고 부족한 세로토닌을 채우기 위해 일광욕을 처방한다.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끌어내기 위해 냉수욕을 한다는 얘기는 두어 번 한 것 같은데, 아무튼 틀린 말은 아닐 테니 원한다면 직접 체험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길항 작용이었다. 도파민에는 현재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반면 세로토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와 만족을 느끼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도파민이 넘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자극을 찾아 떠나고, 세로토닌이 넘치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해 좀처럼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두 개의 호르몬은 완전히 반대의 역할을 하지만 둘 모두 인간의 생존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진화는 이런 게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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