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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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늙었다. 많이 늙었다. 이 늙은 소설가는 소설 쓰기라는 고된 밥벌이를 떠나 잠시 허송세월하는 중인 것 같다. 일산 호수 공원에 자주 나가 철새들을 구경하고 눈이 내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산에 오르기도 한다. 최근엔 그 산마저 끊었다는데, 늙음이란 모든 뜨거웠던 것들과의 안녕이란 생각이 든다. 들뜨고 성말랐던 마음은 차갑게 굳어 아래로 내려앉는다. 끝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세상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풍과 싸우는 중일 때는 그 밑이 얼마나 고요한지 모른다. 싸움에 지고 나서야, 물속에 가라앉고 나서야, 그것이 패배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보는 곳을 달리 한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김훈은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우는 여동생들을 향해 울음을 그치라며 으르렁대던 사람이다. 요망하다고 했는지, 요사스럽다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1948년 생이니 옛날 사람이라 볼 수 있겠지만 김훈의 언어는 40년이 아니라 30년, 20년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옛 됨이 있다. 나는 그 옛 됨이 주는 새로움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을, 김훈은 했다.


심장이 안 좋아 병원을 들락거린다고 한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심지어 혼수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다고 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장편소설 1개 정도가 남았을까? 여의치 않으면 이런 산문 한 두 개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마저도 새로운 글은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 했던 연설, 강의, 썼던 글을 모아놓은 정도.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김훈이 간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아깝다. 김훈이 좋은 소설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유일한 소설가였다. 글로 밥을 버는 무서움을 이해하고, 어느 쪽이냐 묻는 말에 제 가는 길로 대답하는 사람. 김훈이 마지막에 가게 될 그곳은 세상을 뒤흔드는 요망한 말들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 가는 것을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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