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전쟁 - 우리는 왜 이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가
요한 하리 지음, 이선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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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전쟁>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마약을 합법화하자는 것. 마약 합법화? 우선 이런 나라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마약은 엄두가 안 나고 대마 정도는 머릿속에 몇 개 떠오른다. 그것도 비범죄화와 합법이 뒤섞여 있는데 그 차이를 설명하는 건 뒤로하고,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의 일부 주 정도가 떠오른다. 많은 연구 끝에 오해가 풀린 대마가 이 정도인데 헤로인, 필로폰, 코카인을 합법화한다고?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는 세 개의 질문을 던진다. 마약으로 인한 범죄는 왜 일어나는가? 마약은 중독성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누가 마약을 하는가? 저자는 첫 번째 대답부터 강력한 훅을 꽂아 넣는다. 마약 범죄는 대부분 그걸 불법화했기 때문에 벌어진다. 만약 살인을 합법화하면 살인으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살인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말장난을 하고 싶은 건가? 그게 아니다. 마약을 금지한다고 수요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시장'은 범죄조직에게 기회가 된다. 암시장을 과연 누가 운영하겠는가? 국가 공무원? 마트 주인? 수요가 많은 상품은 법으로 막는 순간 어둠의 길로 빠져 통제할 수 없는 태풍이 된다. 이 시장은 균형과 견제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지물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고 중독자들은 오른 가격을 벌충하기 위해 절도나 사기, 나아가 강도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다.


경쟁 업체 입장에서는 더 좋은 상품을 싸게 제공하기보다는 유통 지역을 장악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쿠팡에 올려 총알 배송을 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많이 팔려면 그들이 언제나 쉽게 찾아올 골목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니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마약으로 인한 강력 범죄는 대부분 중독자들이 아니라 이 범죄 단체들이 저지른다.


두 번째 대답. 마약은 사람을 중독시킨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비록 그게 영화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멀쩡한 직업을 가진 번듯한 사람들이 취미로 코카인을 흡입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미국에는 유명한 헤로인 중독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는 사람이었는데 그 임무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정부는 그가 거리에서 마약을 구매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헤로인을 공급해주기도 했다. 그 이름은 바로 조지프 매카시. 빨갱이들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난사했던 사나이. 역시 그건 약을 빨고 한 짓이었다.


마약은 단 한 번만 해도 인생이 끝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마약을 하면서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 이 대목에서 저자의 대답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온다. 마약이 사람을 중독시키는 게 아니라, 중독될만한 사람들이 마약을 찾는 것이다. 이 말은 세 번째 대답으로 이어진다.


그럼 중독자들은 왜, 무엇을 위해 마약을 하는 걸까? 고립감 때문이다. 그들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배제된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마약을 한다. 여기서 시간선은 아주 중요하다. 반드시 배제를 중독의 앞에 둬야 한다. 아마도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외롭고 힘들다고 다 마약을 하나? 하지만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세상에는 이런 문제 때문에 마약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그들의 마음이 강해져 당신 같은 '건실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상황을 바꿔보자. 회사를 가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만 힘들어?


당신의 말을 듣고 친구가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리라.


마약은 불법이기 때문에 마약을 하는 사람은 범죄자가 되고 범죄자가 됐기 때문에 직장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고, 거리로 나가 노숙을 하고, 구걸을 하고, 가게의 물건을 훔친다.


정밀 기계로 유명한 스위스라고 하면 나는 늘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파워 T의 합리자들이 떠오른다. 이 사람들의 눈에는 마약 중독자가 구제불능으로 보일 것이다. 놀랍게도 스위스는 한 때 마약 문제가 심각했다. 그러다가 이 나라에 우연히 중독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그녀는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감소는커녕 매년 악화되기만 하는 마약 문제에 다른 식으로 접근했다. 중독자와 전쟁을 벌이는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것이다. 그녀의 처방은 혁명적이었다. 그녀는 마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마약을 나눠줬다. 주요 감염의 통로가 되는 주사기를 공짜로 바꿔주기도 했다. 그녀의 눈에 중독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돌봐줘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스트레스로 폭식해 비만이 된 사람을 우리는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견디느라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우는 골초, 매일 밤 소주 한 병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을 경찰이 잡아가지는 않는다. 마약이 달라야 하는 이유가 뭘까?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방 한 구석에 조용히 누워있다. 그가 경찰에 잡혀 회사에서 잘리기 전에는. 그렇게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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