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2024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 소설상 수상작
탐낌 지음, 우디 옮김 / 엘릭시르 / 2025년 8월
평점 :
탐 낌은 한국을 좋아한다. 박찬욱을 좋아하고 팬데믹 시기에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의 핵심 주제 중 일부를 채우기도 했다. 나는 이 얘기를 국뽕이 아니라, 탐 낌이라는 인간, 이 홍콩인이 가진 문화적 개방성을 논하고자 꺼냈다.
홍콩은 자유 국가'였다'. 중국과는 달랐다. 그래서 89년의 천안문 사태 이후 완전히 불구가 되어버린 중국인과 달리 폭거가 진행됐을 때 우산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분연히 일어섰고 평화로 맞섰다. 홍콩인에게 자유는 목숨과도 바꿀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좁은 땅덩이에서 이토록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뿐인가? 집값은 하늘을 뚫고, 거리는 맛있는 걸로 가득하고, 여름은 습기로 넘치고, 사람들은 빠르고.
개방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정체성을 단단하게 다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모든 것에 열려있어 온갖 것이 정신을 돌아다니는데 그 와중에 어떻게 나만의 것이 생기는 걸까? 그런데 경험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렇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치고 개성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개방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인다. 채워서 덧붙이고, 어쩔 땐 깎아서 끼워 넣는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소설이다. 홍콩이 아니라면, 탐 낌이 아니라면, 이 소설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쓰우 씨가 왜 다 죽어야 하는지 얘기해 보자. 쓰우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다. 그러니 쓰우 씨가 다 죽어야 한다면 한 가계가 멸족한다는 의미고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홍콩에서 쓰우란 성은 사우스 코리아의 황보나 독고보다 더한 희성이다. 섬을 다 뒤져 수십 명 정도를 찾을 수 있을 정도. 그래도 이 정도면 학살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쓰우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멸족을 당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행위와 처벌의 무게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 약간은 아쉬웠다. 쓰우가 다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야기가 너무 커져버린 탓에 주인공 혼자만의 힘으로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 부분은 탐 낌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치서우런이라는, 신조협려의 주백통 같은 경찰 하나를 붙였는데, 캐릭터의 매력과는 별개로 그의 힘이 너무 강했다는 건 역시 이야기의 탄력을 느슨하게 만든 주범이지 않았나 싶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앞으로 탐 낌을 애정의 눈으로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