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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5 : 무측천의 정치 ㅣ 이중톈 중국사 15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평점 :
무측천이다. 기나 긴 중국 역사에 기록될만한 여자가 어찌 한 둘이겠냐마는, 그 수많은 여인들 중 오직 무측천만이 황제에 등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측천이다. 여황 폐하다.
본디 무측천은 태종 이세민의 보잘것없는 후궁에 불과했다. 당나라 시대의 후궁 제도는 1후, 4비, 9빈, 27세부, 81어처로 나뉘는데 당연히 후가 으뜸이고 비, 빈, 세부, 어처 순으로 지위가 나뉜다. 27세부는 다시 첩여, 미인, 재인의 세 등급으로 나뉘고 각 등급당 9명이 배정된다. 무측천은 이중 정 5품 재인으로 27세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의 후궁이었다. 뽐낼 거라고는 그저 81명으로 구성된 어처보다는 지위가 높았다는 것. 이랬던 그녀가 무측천이 될 수 있었던 건 태종의 아들 이치, 바로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이었다.
이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선왕이 붕어하면 그가 거느리던 첩은 모두 비구니가 되는 것이 상례였다. 무측천도 처음에는 머리를 깎고 감업사로 들어가 비구니가 됐다. 고종은 그런 여자를 다시 불러 자신의 황후로 삼았다. 그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건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종의 후궁이라면 고종의 어머니 아닌가? 아버지가 품던 후궁을 왕후로 들이는 건 제도니 예법을 따지기 전에 망측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 당연히 정사에는 기록이 없다. 이중톈 선생은 태종의 병시중을 중요한 계기로 제시한다. 태종이 중병을 앓던 무렵(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데다 병까지 얻어왔다) 고종은 태자의 신분으로 직접 탕약을 끓여 바쳤고 무측천은 재인으로서 음식과 일상을 책임졌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어머니와 눈이 맞다니, 고종이란 남자, 나사가 두어 개는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아니면 무측천이 그 정도로 대단한 여인이었다고 생각할 밖에.
고종은 당연히 몰랐다. 부인이 자신을 밀어내고, 함께 낳은 아들들마저 끌어내린 뒤 스스로 황제가 될 줄은! 그건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무측천의 손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는데, 심지어 이 여황 폐하는 장수까지 했다. 죽기 직전까지 젊은 남자 친구들을 여럿 거느리기까지 하면서. 정말 대단한 정력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나라 사람들은 전부 바보였단 말인가? 황후가 황제가 되고, 국호를 당에서 대주로 바꾸고,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를 따라 무씨로 성을 바꿨다. 언제 왕조가 교체되는지 생각해 보자. 오래된 왕조는 점점 무능한 왕과 부패한 신하들로 고통받다 서서히 몰락하고 그쯤 새롭게 태어난 세력의 혁명으로 무너지는 법이다. 무측천은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한 왕조가 가장 번창하던 시절 오직 힘으로 찍어 눌러 자신의 국가를 세웠다.
이것은 민심의 덕이었다.
무측천은 저 대단한 이세민조차 해내지 못한 고구려 정벌에 성공했고 과거제를 적극적으로 실시해 새로운 인재들을 대거 발탁했다. 죽이고 또 죽여도 사람은 넘쳐났던 것이다. 게다가 피의 축제는 백성의 것이 아니었다. 위에서 누가 살고 죽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고, 편하게 자고 있는 걸.
그녀가 물러난 뒤 지리멸렬해진 당나라를 보면 확실히 무측천이 대단하긴 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