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햣켄 기담집 - 공포와 전율의 열다섯 가지 이야기
우치다 햣켄 지음, 김소운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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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유명세 탓에 나쓰메 소세키를 말랑말랑한 소설가로만 아는 경향이 있는데, 소세키의 걸작은 사실 환상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난 단 하나의 단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 충격은 소세키의 모든 작품을 다 합쳐도 부족할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그 소설은 글로 닿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계는 오직 작가의 재능에 달린 것일 뿐, 글이라는 수단이 갖는 문제는 아니었다.


과거에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유명한 선생님의 문하생이 되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스승의 추천으로 등단한다. 나쓰메 소세키라 함은, 한 때 천 엔짜리 지폐에 인쇄될 정도로 일본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작가다. 얼마나 많은 문하생을 거느렸겠는가. 우치다 햣켄은 소세키의 문하생이었고, 환상 문학의 가지를 이어받는 사람이다.


이 소설들에는 분위기가 있다. 스승의 걸작에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스산하고 담담한, 잡내 없는 문장들은 독보적이다. 아주 이상한 상황과 간결한 기술 사이의 괴리가 불안과 기괴를 증폭시키는 것 같다. 부족한 재주를 끌어 모아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


달리던 전철이 서지 않고 몇 개나 역을 지나치는데 사람들은 태연이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훅 끼쳐 들어온 냄새에 코를 막고 말았다. 동물의 사체가 썩는 냄새에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일어나 자리를 옮기려는데 다른 칸으로 넘어가는 문 앞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땅바닥을 보고 서 있었다. 맨발이고, 손톱에는 붉은 때가 가득했다. 몸을 앞 뒤로 흔들며 주문인지 저주인지 모를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이런 얘기였다.


"저기요, 제 아이를 보셨나요?"


그녀는 눈, 코, 귀에서 검붉은 피를 쏟아내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여자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화면을 응시했다. 여자가 내 앞에 오기 전 나는 전철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 역을 출발한 지 한참 된 전철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나는 다음 칸으로 옮겼다. 다시 다음 칸으로, 또 다음 칸으로. 나는 마지막 출입구 앞에 서서 전철이 서기만을 기다렸다. 여자는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거리를 줄이며 내게 다가왔다. 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가까웠다.


전철은 멈추는 걸 잊은 듯했다.


다 쓰고 보니, 햣켄의 글과는 영 분위기가 다르다. 그의 문장은 이렇게 요란하지 않다. 훨씬 은근하고, 섬세하다. 겉보기엔 휙휙 쓰는 듯해도, 역시 대가의 붓끝은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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