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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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후는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였다. 부인과 별거를 위해 최근 다른 도시로 전근을 왔다. 고인 물들이 가득한 학교였기에 준후의 회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일은 젊다는 이유로 모두 준후에게 쏟아졌다.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았다. 무미한 그의 인생에 유일한 맛은 다현과의 연애였다.


다현은 준후의 제자였다.


유부남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의 사랑. 범죄였고, 그래서 준후의 구미를 당겼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그 관계를 지속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준후는 다현이 자신의 삶 깊숙이까지 들어오는 건 싫었다. 다현은 준후가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과 새 삶을 꾸리기를 원했다. 부모는 일찍 죽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다현은 따뜻한 가정을 원했다. 준후에게 다현은 일탈이었다.


이 문제로 크게 다투고 난 뒤 어느 날 다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준후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다현이 기댈 곳은 자기밖에 없었으니까. 준후는 자신의 교실에서 다현과 뜨거운 정사를 나눴다. 야근을 마친 뒤 다시 한번 만나자고 약속까지 하면서.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준후는 다현의 전화벨 소리가 교실에서 울리는 걸 들었다. 준후는 교실로 올라왔다.


다현은 나체로 목을  채 죽어있었다.


<홍학의 자리>는 <2인조>의 작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빡빡한 소설이다. 이것저것 따질 거 없이 도대체 범인이 누구야, 왜 죽인 거야 라는 궁금증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뿜어져 나온다. 멈출 수가 없다.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기 위해 독자는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소설은 야금야금 매듭을 풀어나간다. 잘 꾸민 미드처럼, 에피소드 끝자락마다 새로운 단서를 뿌려놓고 독자가 덫에 걸리기를 기다린다. 하나둘씩 용의자가 등장한다. 충격의 연속이다.


소설은 잡기술을 쓰지 않는다. 프릭쇼처럼 보이는, 고양이도 물고 가지 않을 덜 떨어진 트릭으로 완전범죄 같은 걸 꿈꾸지 않는다. 억지 반전은 없다. 장담컨대 소설의 최종장에서 당신은 꽤 충격적인 반전을 맞닥뜨릴 것이다. "And like that... he's gone"(Usual Suspect)이나 "I see dead people"(Sixth Sense) 만큼은 아니겠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설이 이 반전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무거운 진실을 들어 올리기에 그 대사는 힘이 부족했다. 영화라면 다른 연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미도의 앨범을 한 장씩 넘기는 씬처럼. 좀 더 고조시키는 묘사가 있었다면, "I see dead people."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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