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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1 : 위진풍도 ㅣ 이중톈 중국사 11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평점 :
위진을 대하는 이중톈 선생의 태도에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중화 문명의 최암흑기라서 그런 건지, 이 시대엔 그다지 논할 게 없어서인지, 그동안 선생이 새로운 시각으로 시간을 꿰뚫어 허를 찌르는 해석을 내놓았던 것과는 달리, 오직 인물에 집중하여 최대한 그 시대로부터 고개를 돌리려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왜 그럴까?
위진 시대란 후한이 멸망하여 위, 촉, 오의 짧은 삼국시대가 끝난 뒤 조 씨의 위나라서 들어서고, 이후 사마씨의 쿠데타로 진나라가 세워진 시대를 일컫는다. 나라들이 워낙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져 하나의 왕조가 진득하니 제 땅을 지켰던 적이 없다. <삼국시대>에도 말한 바 있듯 조조의 위나라는 법가를 통치 이념으로 서족 관리들이 살림을 꾸려나가는 나라였다. 조조가 만고의 간웅이니 뭐니 당대의 정치적 몰매를 맞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명문세가의 사족 지주 계급은 고작 환관의 양자에 불과한 조조 따위가 달가웠을 리 없다.
그래서 서진은 달랐는가? 달랐다.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사마씨는 조조와는 달리 명문세가에 속하는 가문이다. 조조가 '관도대전'을 통해 원소의 정치노선을 격파한 것과 완전히 반대로 진나라는 원소의 노선을 다시 불러들인다. 과거로의 회귀. 옛것의 복원. 그런데 힘 조절이 잘못됐는지 진나라는 여기서 더 나아가 봉건시대로 회귀한다. 나라를 여러 개로 쪼개 사마씨를 가진 왕을 봉했고, 당연히 정국은 대혼란에 빠져든다. 진나라는 결국 각지에 봉한 왕들이 이른바 '팔왕의 난'을 일으켜 내전에 빠져들고 이때를 노려 북방의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아 망해버린다. 남은 정치세력은 남쪽으로 내려가 '동진'이 되고 이른바 중원이라 부르는 중국 문명의 알짜에선 5호 16국이라는 오랑캐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중화가 중원을 빼앗긴 건 큰 일이었다. 온갖 모순에도 불구하고 충이니 의니 하는 것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그 이념을 믿는 이들이 중원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자는 중원을 갖고 세계를 지배할 이념을 통제한다. 이 공식이 무너지면 중화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이 큰 괴리를 보일 때면 늘 형이상학이 발달하는 것 같다. 육체는 패했으니 정신으로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송나라 때 주자학이 탄생했다면 위진 시대에는 현학이 등장했다. 그 유명한 죽림칠현이 바로 이 시대의 결과였다.
진나라는 유교적 이념을 숭상했지만 골육상잔을 벌이는 등 그 모순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당시 지식인들에게 이른바 '현타'가 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충이고, 이게 무슨 의인가. 나아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현학의 삼경은 주역, 노자, 장자였다. 무위의 철학. 속세를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 술을 빚고 거문고를 치며 청담을 주고받는다. 권력은 허무하고 세상은 무상하다. 위진시대의 인재들은 최대한 국가 권력과 멀리하는 것이 자기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였다. 그들은 높이 오른 이들을 모욕하기를 즐겼고, 병적으로 자유를 추구했다.
이중톈 선생은 이 시대를 '앓아야 할 병'으로 정의한다.
"실제로 중국 문명이 3700년간 중단 없이 이어져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지금까지 존속된 초기 문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민족이 대혼란을 통해 통합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진남북조가 바로 그런 대혼란이었다."(p.208~209)
위진남북조라는 병균은 중화 문명에 항체를 만들어 수와 당이라는 대제국의 모태가 된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을 살펴봐야 하나?
위진은 이제 남북조로 흘러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