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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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본다. 부족하다. 다시 한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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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10년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가 될 것 같은 이 남자는 항상 마법과 같은 이야기로 내 마음을 짓이겨 녹인다. 웃긴 건 이 사람의 마법이 과학에서 도출된다는 점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을 이야기로 조각하는 작가. 정신없이 빠져들어 내 정신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스며들고, 또 위로 아래로, 좌우로 흐르며 하나가 되는 경험은 산만함이 호흡이 된 요즘 세상에 진정한 몰입의 황홀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매니악>은 연작 소설이다. 위대한 과학이 탄생하는 순간, 또는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들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해 상식의 안과 밖을 뒤집어버린 지점을 파고들어 소설을 구성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이야기인지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이 소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가늠할 길이 없지만, 우리로 하여금 과학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면, 진실과 진리의 차이를 알려주고 싶은 거라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은 <파울 또는 비이성의 말로>, <존 또는 이성의 광기 어린 꿈>,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명성>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파울은 물리학이 수학으로 환원되기 시작한 시대에, 천재들과 함께하면서도 그 천재들만큼은 계산 능력이 없어 실의에 빠진 물리학자다. 만약에 그에게 계산기가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라 부르는 기계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이제 지구 역사상 가장 똑똑했던 남자, 지성의 한계를 가늠할 길이 없어 외계인으로 불렸던 남자, 암에 걸려 죽어가는 동안 행여나 혼수상태에 빠져 국가의 기밀을 누설할까 두려워,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그 입에서 나올 위대한 진리의 조각들을 하나라도 더 주워 담기 위해 무장 경비 둘이 지켰고, 국방부의 허락 없이는 면회도 불가능했던 천재 '존 폰 노이만'으로 이어진다.


그는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는 기계의 구조를 처음으로 설계한 사람이다. 우리의 컴퓨터는 아직도 그 구조로 동작한다. '폰 노이만 아키텍처'라는 이름으로.


다른 계산을 하기 위해선 전기 배선 자체를 바꿔야 했던 시절을 지나 컴퓨터는 이제 지능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딥블루가 불세출의 체스 마스터 카스파로스를 꺾었을 때 서양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흑백의 돌 둘을 쥐고 불가사의와 무한의 수 읽기를 펼치던 동양의 신들에게 그 사건은 관심을 가질 이유조차 없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바둑으로 도전한다. 둘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우주의 시간을 다 써도 셀 수 없다는 그 심오한 기예를.


우리는 그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기계가 드디어 절대 넘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그것도 압도했다는 사실을.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겸손해본 적이 없던 그 이세돌을 갓 바둑을 배운 초보자처럼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또 기억한다. 무기력하게 3판을 내줬던 이세돌이 제 4국에서 둔 신의 78수, 바보처럼 보였던 이세돌이, 사실은 인공지능을 이긴 '유일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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