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레이첼 카슨은 1907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프링데일에서 태어났다. 1967년에 태어났어도 죽도록 힘들었을 텐데 1907년이라니,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상상이 된다.


지금에야 <침묵의 봄>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에는 혁명 그 자체였다. 화학 산업은 전후 기술 발전의 최대 수혜자였다. 1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화학전이라는 게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은 유대인 대학살의 파이널 솔루션으로 톡톡한 역할을 했다. 그 유명한 아스피린의 바이엘과 세계 최대 화학기업 BASF가 바로 독일 전범기업의 후신이다.


미국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전쟁을 통해 혁신한 이 산업들은 국가의 부를 이끄는 선두주자였다. 그들의 제품은 해충을 박멸한 농업의 신이었고 식량 문제를 해결한 기아의 해결사가 되었다. 바야흐로 과학자들의 시대였고, 전문가의 전성기였으며, 그들의 권위에 순종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여성 과학자 카슨은 그런 세상을 살았다. 게다가 그녀가 공부한 생물학은 당시에 아직 위대한 다른 과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부족한 학문이었다. 그녀는 과학계로부터 무지한 학자로 취급됐고 일반인들로부터는 히스테릭한 여자로 공격을 받았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마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1967년 7월 '뉴욕타임스'는 헤드라인을 통해 "올여름 <침묵의 봄>이 상당한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 세상에서 소란을 일으킨 이 책을 기적이라 부르는 건 매우 편한 평가일 것이다. <침묵의 봄>은 오직 글의 힘만으로, 세계의 편견과 무지를 깨뜨린 역사상 몇 안 되는 책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읽는 우리의 마음에 그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연재한 몇 개의 칼럼을 묶어낸 것인데, 그런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기승전결이 없는 리듬의 문제를 겪는다. 솔직히 말해, 지루함과 싸워야 한다.


이 지루함은 매일 쓰는 세제나 음식물에 이름이 흉흉한 화학물질이 무더기로 쓰여 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쓰고 먹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주변에 넘쳐나는 난임, 불임 부부들은 살충제의 습격으로 가장 먼저 생식 기능을 잃은 동물들을 떠오르게 하지만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비웃음을 사거나 대단한 음모론자로 취급당할 것이다.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드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많아지면 된다. 범죄가 만연한 나라에선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것처럼.


카슨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미국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솔직히 화학물질들이 너무 자연스레 달라붙어 거대한 독극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침묵의 봄>을 쓸 당시의 레이첼 카슨도 딱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시대에 침묵한 건 봄이었지만, 이제는 인간이 침묵할 차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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