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호칭 문학동네 시인선 18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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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고 싶을 때 시집을 읽는다. 평소에는 함께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 먼 곳에서 찾아와 한 문장을 이룬다. 이게 저 옆에 설 수도 있구나, 저게 이 앞에 올 수도 있구나. 그 낯섦에 읽는 눈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요철이 마음에 걸린다. 두 개가 만나 온전한 그림을 이루는 퍼즐처럼.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에는 구름과 바람과 꽃이 흐드러진다. 그러나 이것들은 평범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이 시에서 구름과 바람과 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에 가깝다. 구름이나 바람이나 꽃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것들은 그냥 우리의 옆에 서 있는 자연물이다.


  긴 기다림일수록 빨리 풀리는 바람의 태엽

  입김을 동력 삼아 한 꽃이 허공을 새어나온다

  찢겨진 것들의 화음으로 소란한 봄

  꽃은 피는 것이 아니다.

  찢겨진 허공에서 새어나오는 것일 뿐

- 별무소용(p.34)


  꽃잎이 귀띔해준 

  초속 3센티미터로 지는 그 이름은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말들은 공기의 미동에 따라 알맞게

  바람에게서 귀동냥한 표현이거나 출처를 잊어버린 인용의 일부이기도 하다

- 발끝의 고해성사(p.78)


  빗물 고인 소금사막에 떠 있는 기억의 신기루

  그 풍경을 손에 담으면 구름을 간직할 수 있을까

  간직을 꿈꾸게 하는 이름들

  구름과 당신이 같은 종족임을 말하지 않겠다

- 소금사막에 뜨는 별(p.80)


  바람의 춤이 보인다면 그건 구름의 몸을 빌렸거나 폐활량이 푸른 여름잎의 소관일 것, 구름은 바람으로 흐르고 바람은 여름잎으로 들리니까

- 허밍, 허밍(p.94)


<다정한 호칭>은 쉽게 읽히는 시는 아니다. 멀리 있는 고단한 잠과, 나를 찾지 못한 잠이 누구의 호흡으로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있는지(p. 60) 절기 전에 꽃을 잃는 기억(p.72)이 무엇일까 상상해야 한다. 손을 짚어가며 여러 번 읽어도 눈이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시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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