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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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혈연을 기반으로 한 행복공동체가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하부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에는 아빠와 엄마와 아들과 딸과 크게는 사위와 며느리가 존재한다. 구성원들을 부르는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호칭은 각각의 역할을 규정한다. 예컨대 아빠는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살림을 하며 아들과 딸은 학업에 전념하여 입신양명하고 사회적 위치를 갖추고 난 뒤엔 부모를 공양한다. 자녀가 결혼하여 사위나 며느리가 생기면 조직은 분할하거나 확장한다. 호칭은 성별을 따르고, 호칭이 역할을 규정하므로 결국 가족 내에서의 직책은 '성'이 결정한다. 저자 김지혜 교수는 이것이 견고한 '각본' 같다고 말하는데, 실상은 조직도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가족각본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해 자신이 각본을 따르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역할이 자신을 대단히 괴롭힐 때도 있다. 그럴 때조차 우리는 이 역할 자체에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각본을 잘 수행하지 못한 자신의 능력 부족에 괴로워한다. 남들은 다 하는 걸 왜 나는 하지 못하는가!


각본의 실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성소수자 혹은 퀴어라고 불리는 인물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등장할 때다. 이들은 가족각본이 정해놓은 역할을 꼬이게 만든다. 당신의 아들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거나 동성의 애인과 결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자. 일단 호칭부터 문제다. 평생 아들로 불러왔던 그를 이제는 딸이라고 불러야 한다. 아들과 결혼한 동성의 애인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는 사위인가? 아니면 며느리인가? 둘 중엔 누가 아내고 누가 남편인가? 호칭의 혼란은 단순히 그들을 부를 때의 불편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호칭에는 기대되는 역할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호칭이 바뀌면, 그의 역할도 달라진다.


2022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앞에 피켓을 든 반대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들고 온 피켓 중 특히 김지혜 교수의 눈길을 끈 것은 "남자가 며느리? 여자가 사위?"라는 문구였다고 한다. 동성결혼에 대한 거센 저항은 여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며느리와 사위가 그 핵심으로 떠오른 나라가 또 있을까? 웃기는 일이다. 결혼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고 그렇게 결합한 공동체가 가족이라면 그 구성원이 남남이든 여여든 여남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족각본은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종용하는 이유는 결혼=출산=육아를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며느리가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레즈비언보다 게이 커플에 더 민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남자 며느리는 자기 배로 아이를 품지 못하고, 젖을 먹일 수도 없다. 아이가 자라는 데는 무엇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남자 며느리는 심지어 직장을 관두지도 않을 텐데 과연 '제대로 된 육아'를 할 수 있을까?


가족 내에서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는데 사회에서 성평등을 추구하겠다는 건 모순에 불과하다.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담당한다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남자에게 더 많이 부여하는 것도, 남녀 간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가족각본>은 가족이 강제하는 각자의 역할이 단순히 가족 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도 그랬지만 김지혜 교수의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틀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충격을 선사한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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