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지음, 최정수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나라는 존재가 나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의 소유물을 내가 어떻게 다루냐 나라는 문제 앞에서는 꽤 복잡한 논의가 발생한다. 몇 가지 생각을 해보자.


자기 소유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 권리라면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다루든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매춘도 정당한 상거래로 인정해야 한다. 내 몸을 내가 팔아 생계를 잇겠다는 데 누가 참견할 일이란 말인가. 권리는 오직 윤리와 도덕이 허용하는 선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장기 매매에 대해 생각해 보자. 돈이 필요한 사람은 신장을 팔고 신부전을 앓는 사람이 그걸 산다. 이 거래에는 단 한 구석도 부도덕한 면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장기 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걸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부자들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인간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두려워하는 걸까?


모호한 예시는 이것 말고도 많다.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만 해도 그렇다. 자기 방구석에서 평생 마약을 하다 죽는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금지할 만할 명분이 없어 보인다. 약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것도, 치료 시설에 들어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국가가 마약을 금지하는 이유는, 중독자가 많아지면 생산력에 공백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세수가 감소하는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해 국가 체계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비용의 문제지 윤리적 문제는 아니다.


자기 자신을 파괴할 권리에 국가가 어느 수준까지 개입해야 옳은가 따지는 일은 이처럼 딱 부러지지 않는다. 적극적 개입을 옹호한다면 우리가 마약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술, 담배, 심지어 정제 탄수화물이나 단순당을 금지해도 딱히 반대할 근거가 없다. 반대로 완전한 자유를 허용한다면 코카인을 빨고 주식 거래를 하든, 자기 각막을 팔아 대출금을 갚든 아무 문제가 없다.


최근 각국에서 합법하되는 추세를 보고 있으면 안락사에는 후자의 논리가 따르는 것 같다. 삶의 결정권은 오직 자신에게 있으며 이를 막는 것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와 권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죽을병에 걸려 회생이 불가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있다. 이 결정의 밑바탕에는 우리 인간에겐 불필요한 고통 없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나는 이것이 불필요한 윤리적 수사라고 생각한다. 안락사를 살인으로 보는 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핑계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회생 불가의 병 말고도 인간의 존엄을 헤치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상황이 셀 수 없이 많다. 왜 이런 사람들에게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국가가 마약을 통제하는 이유와 정확히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이처럼 안락사를 결정하는 순간에는 윤리 도덕적 고민보다는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따지는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인간보다 사회, 혹은 국가, 혹은 정부가 더 위에 있는 것이다. 안락사를 막는 건 국가의 폭력일 뿐이다.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 안락사 지지자, 그것도 모든 대상에게 허용하자는 적극적 옹호자다. 그런데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 풍기는 냄새를 맡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나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안락사의 대상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꿔보길 바란다. 예컨대 우리의 엄마, 아빠가 안락사를 원한다면? 당신의 사랑하는 딸이,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며, 왜 나를 이런 나라에서 낳았냐며, 조력 자살을 신청하겠다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은가?


안락사에 대한 거부감은 책을 읽기 전 까지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면에서도 발생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진행한 조력 자살 사례가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걸 쭉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묘한 감정이 든다. 동의를 했든 어쨌든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행위는 그들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남을 죽인 대가로 보험 수가를 받아 직업을 유지한다. 저자는 어느 날 안락사를 마친 뒤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던 경험을 고백한다. 그녀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얘기한다. 그녀만큼 나도 당황했다.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내 마음속엔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이 고여 들었는데 그게 불쾌감인지, 섬뜩함인지, 분노인지, 공감인지, 아니면 죄책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책 자체는 굉장히 지루한 편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고백을 읽다 보면 책 내용과는 무관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확고한 신념이란 게 알고 보면 얼마나 얕고 연약한 것인지도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